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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봉파파 Nov 04. 2019

교육과정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앞선 글에서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교육과정’이라는 문서를 근거해서 운영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나라는 공적인 교육과정을 만드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이를 전국의 모든 학교에 적용을 하고 있죠. 과거에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만 존재했기 때문에 국가의 정책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적 가치를 학교에서 적극 반영하고 실행하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일선 학교별로, 그리고 교사 개인별로 다양하고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요즘은 교사 개인의 역량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와,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특성에 맞게 교육과정을 운영해야하는 책무가 생겼습니다. 교사가 어떤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기존에 있던 교육과정의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후퇴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교사가 교육과정을 그대로 운영했기 때문에 교사보다는 교육과정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운영하기 때문에 교육과정보다 교사가 더 중요합니다. 교육과정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습니다.


저는 독서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생각과 느낌을 마음껏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독서와 관련된 경험과 활동이 그들의 인생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죠. 평소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독서교육에 나름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학생 인문·책 쓰기 프로젝트」사업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PEN-club 인문학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동아리 운영을 계획하고 사업에 공모를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만든 동아리가 선정이 되어 예산을 받아오고 교육활동을 운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먼저 학생들과 함께 읽을 책 한 권을 선정했습니다. 지원 받은 예산으로 아이들에게 함께 읽을 책을 한 권씩 모두 사줄 수 있었죠. 정말 뿌듯했습니다. 마음에 그리던 진정한 독서교육의 첫 출발을 책을 한 권씩 선물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니! 제 열정을 불을 지폈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책과 관련된 역할극, 인상 깊었던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소개하기, 책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토론하기 등 책 한 권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정말 풍성하더군요. 

그리고 우리는 직접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은 책을 만들어보자는 제 생각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귀찮음이었죠. 말년병장에게 제설작업을 부탁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설득해야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떤 주제로 책을 만들 것인지 토의를 했는데요. 어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나름 열심히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초고를 쓰고 여러 번의 퇴고를 했습니다. 저는 편집자의 역할을 했는데요. 최대한 아이들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방향으로 편집을 했습니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가끔은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답답해 보이는 아이들도 정말 다양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그렇게 우리는 책을 완성했습니다. 책의 제목은 <어른들은 모르는 6학년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은 모르는 6학년 이야기 - PEN-club 作>

책을 만들었으면 파티를 해야겠죠? 저는 아이들과 함께 ‘북 콘서트’를 기획했습니다. 교직원, 학생, 학부모를 초청해서 우리가 만든 책을 소개하고 책과 관련된 활동을 발표하고 다양한 장기자랑도 했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해주셨고 행사에 대한 호평이 넘쳐났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책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었고,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는 데에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죠.

마지막으로 동아리 활동을 정리하면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동네에 있는 서점에 들렀습니다. 책을 한 권씩 직접 골라 사줬죠.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고르기 위해서 신중을 기했는데요. 이러한 활동을 한 시민이 제보해서 지역 신문에 소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동아리 활동이 소개된 기사

다시 교육과정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문서화된 교육과정에서는 독서교육을 위의 사례처럼 운영하라는 언급은 하나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제가 교육과정에 나와 있는 독서교육 내용을 조금 살펴봤는데요. 초등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독서 교육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습니다. 중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1학기 1권 수업 시간에 읽기’라든가, ‘읽고, 생각 나누고, 쓰는 통합적인 독서활동에 관한 성취기준, 학습요소, 교수·학습 방법 및 유의사항 제시’정도로 언급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교육과정은 정말 큰 틀에서 독서교육이 필요하다는 정도만 언급할 뿐 세부적인 내용은 교사가 스스로 재구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독서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교사라면 혹은 독서교육에 대한 나름의 계획과 방향이 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교사라면 교육과정을 뛰어넘는 독서교육이 운영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과정은 교사의 질을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학교, 같은 교과를 운영하는 모습이 각 학급마다, 각 교사마다 다릅니다. 제가 1반부터 4반까지 똑같은 과목의 똑같은 차시 수업을 관찰해도 교사가 교육과정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수업의 방향이 상이하죠. 혹자는 개별로 교육과정이 상이하게 운영되면 공통으로 생각하는 중요한 내용과 가치가 왜곡될 수 있지 않을까 의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과정의 운영이 교사마다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을 다니더라도 학급마다의 분위기가 있고 학급을 운영하는 개인들의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그 학급을 맡고 있는 담임교사입니다. 교육과정이 주도하고 있는 교육 내용의 큰 가치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고려해 적절히 내용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급은 어떤 교육활동을 하고 있나요? 저처럼 독서교육이나 글쓰기 활동이 많을 수도 있고, 노래 부르기나 악기 연주 활동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담임교사가 생태체험활동을 운영한다면 다른 학급 친구들보다 근처에 있는 공원에 더 많이 나갈 수도 있고, 봉사활동을 운영한다면 교내외의 다양한 곳에 봉사를 다닐 수도 있겠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학교는 다양한 교육활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교사가 다양한 활동을 만들고 아이들이 그에 맞는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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