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매우 감정적인 동물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논리는 감정을 합리화시키는 도구일 뿐이라고. 또 옛 선현들은 감정의 종류를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으로 정의하면서 그것과 관련된 연구와 논쟁을 하곤 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감정과 뗄 수 없는 존재인데요. 잠을 자는 순간을 빼고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이 감정의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하고 우리와 늘 함께 하고 있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을 조금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쉽게 노출하면 치졸하고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까봐 겁을 내죠. 예를 들면, 친한 친구와 의견 차이가 있을 때 마음이 불편해져도 티를 내지 않고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문제가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더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그 때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고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면 그렇게까지 크게 번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 속 좁은 친구라는 비난을 들을까봐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거죠.
저도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제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일들이 너무 많아 후회가 됩니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해 끙끙 앓다가 혼자 힘들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었죠. 저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꾹 참고 상황을 모면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때문에 감정코칭과 관련된 도서가 종종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수직적인 조직이 많이 있었고 까라면 까라는 순종과 복종을 미덕으로 여겼던 분위기가 제대로 된 감정 표현을 막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자기 자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죠. 감정을 묵혀두면 병이 생깁니다. 답답하고 초조해지죠.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은 채 상대방이 감정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그러한 것들이 ‘눈치’라는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화도 생기고 원망도 생겨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또, 갈등이 고착되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감정싸움으로 번져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는 연습이 감정공부입니다. 초등학생들에게는 감정공부가 필요합니다. 이 시기에 감정공부가 부족하면 앞으로 성장함에 있어서 감정 때문에 스스로 애를 먹는 상황이 많이 연출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아까 ‘눈치’라는 문화를 언급했는데요. 실제로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눈치 때문에 다툼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는데 오늘따라 기분이 영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슬슬 그 친구의 눈치를 보다가 뭔가 나한테 문제가 있는지, 내가 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는지를 걱정하고, 그러다가 방어적인 태세로 전환을 해서 되려 기분이 안 좋은 친구를 이상하다고 몰아가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던 친구가 실제로 기분이 좋지 않아도 다른 일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친구의 기분은 괜찮았는데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죠. 만약 서로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공유했다면 또 다른 오해를 발생시키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솔직한 감정표현이 없었기 때문에 사소한 표정과 말투로 싸움이 발생하는 것이죠.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공부를 많이 합니다. 저는 학급을 운영할 때 감정카드라는 것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감정카드는 기쁨, 슬픔, 노여움, 우울함, 분노, 귀찮음, 짜증남 등의 온갖 감정들이 적혀있는 카드입니다. 감정이 텍스트로 써져있고 그 감정에 맞는 표정도 귀여운 그림으로 그려져 있죠. 아침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각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카드를 골라 책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하죠. ‘○○이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니?’, ‘그 감정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 것 같니?’ 등등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러한 감정이 생긴 원인을 스스로 점검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대화가 오고가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친구도 감정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시원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감정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학급의 모든 학생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합니다. 간혹 한 학생의 이야기가 길어져서 다른 학생의 이야기를 아예 물어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죠. 또 이해관계가 섞여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친구들 앞에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저는 가정에서의 감정공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부모님도 자녀의 감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녀의 감정을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어떤 아이도 부모가 내 감정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라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의 감정을 진심어린 태도로 물어보고 공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그런 태도를 보일 때 자녀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이 곧 감정공부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됩니다. 또 자녀도 자신의 감정을 얘기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고, 자신이 닥친 문제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감정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라포(rapport)’입니다. 라포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말합니다. 라포가 형성이 되어 있으면 서로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이고 어떤 일이든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학교의 교사는 길어야 1년 남짓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는 오랜 시간 사랑으로 라포를 형성합니다. 감정공부에 있어서 교사보다는 부모가 훨씬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죠. 라포는 한 순간에 형성되지 않으니까요. 지금 자녀와 얼마나 라포를 형성하고 계신가요? 라포가 잘 형성된 가정은 오늘 자녀에게 감정을 물어봐도 시원하게 대답을 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라포가 잘 형성되지 않은 가정은 자녀에게 감정을 물어보면 ‘갑자기 왜?’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죠. 하지만 실망하시기는 이릅니다. 꾸준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은 자녀의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저는 감정카드나 다양한 이미지를 이용해서 자녀의 감정표현을 이끌어내는 감정공부를 권합니다. 말로만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면 정확한 감정을 파악하는 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령 오늘도 기쁨, 내일은 그냥 그럼, 모레는 별로 정도의 감정 밖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감정카드나 이미지는 보다 풍부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입니다.
오늘부터 자녀와 시간을 내어 서로의 감정에 대해 진지한 나눔을 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녀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부모님께도 큰 감동을 가져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