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봉파파 Nov 08. 2019

학생회장과 학부모회장의 분리

제가 6학년 담임을 맡을 때 ‘어린이회’업무를 담당했었습니다. 어린이회 업무의 주요 행사는 학급 어린이회 임원과 전교 어린이회 임원을 선출하는 것입니다. 특히 전교 어린이회 임원 선출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빠르게 선거 일정을 공지하고 후보자를 접수하는 과정이었죠. 그런데 어떤 학생이 저에게 고민을 토로했는데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전교 어린이회 후보자 등록을 하고 싶은데 못할 것 같아요.”
“후보자 등록이 어려운건 아닌데 왜 못한다는 거니?”
“엄마가 바빠서요.”

저는 황당했죠. 엄마가 바쁜 사정이 있는 것과 전교 어린이회 후보자로 등록을 할 수 없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보통 전교 어린이회 회장 학생의 어머니가 학부모회의 회장을 맡는 관행이 있는데요, 이 학생은 어머니가 바빠서 학부모회 회장을 하지 못하니 전교 어린이회 회장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학생회와 학부모회는 그 어떤 상관관계가 없으니 자유롭게 후보에 등록할 것을 권했죠. 하지만 결국 그 학생은 학생회장 후보로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학생회장에 당선된 학생의 어머니가 학부모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 또 다시 어린이회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그 때 저는 선거 일정과 후보자 등록 방법을 가정통신문으로 공지했는데요. 이런 내용을 실었습니다.

2018학년도 학생자치를 책임질 전교 어린이회 임원 선거와 1학기 학급 어린이회 임원 선거를 실시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선거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각 가정에서도 협조와 지도를 요청합니다. 아울러 학생 자치는 학생들 스스로 학교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가지는 것이 본연의 목적인만큼, 학부모 활동 혹은 학부모 지원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명시합니다.

  학생 자치가 학부모회 활동이나 지원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가정통신문에 실어서 전달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해의 학생회장의 어머니도 학부모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교사가 이러한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공감했지만 현실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물론 학생회장이 어머니와 활동과 지원에 힘입어 당선된 것은 아닙니다. 분명 본인의 의사로 후보자로 등록을 했고 정해진 원칙과 선거를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당선이 됐습니다. 학부모회 회장 역시 아이가 학생회장이기 때문에 그 직을 맡았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학교에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원을 하셨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학부모회 회장 선출 과정을 살펴본 결과, 학부모회 회장 후보자를 등록할 때 이미 많은 분들께서 학생회장의 어머니가 학부모회 회장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오랜 관행이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관행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학생회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저에게 고민을 토로했던 학생은 충분히 리더십도 있고 학생회장의 자질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학생회장 후보에 등록을 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이 엄마가 바쁘기 때문이라는 것은 그 아이에게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하고 어쩌면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학생회는 말 그대로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의 주체임을 깨닫고 학교 운영 전반에 개입을 함으로서 민주시민의 자질을 기르는 것이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바쁜 것은 그것과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엄마가 바쁘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관행은 후보자 등록에 있어 본질과는 다른 문제에 눈치를 보게끔 만든다는 것이죠.

요즘 ‘공정’이라는 화두가 우리 사회에 어젠다(agenda)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교육과 관련하여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교육과 어떤 연결을 맺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가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이고 대학 입시와는 거리가 멀어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학교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요. 학생회 업무를 맡다보며 이렇게도 연결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학생회 임원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이 문제와는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부모의 학교행사 참여 여부가 학생의 교육활동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학생회장과 학부모회장은 철저히 분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관행을 타파해야합니다. 정말 별개의 조직체임에도 불구하고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결은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화 수준에 비교해볼 때 학교 민주주의의 수준이 굉장히 낮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 학부모님의 자녀가 전교 어린이회 임원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비쳤을 때 ‘엄마는 바쁘다’라던가 ‘그런 거 하면 엄마가 힘들어진다’라는 말씀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학부모회장은 학생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보다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어른의 배려로 생각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