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딩들이여, 힘내시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거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IMF, 글로벌금융위기 때와 맞먹는 경기침체가 장기화 될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몇몇 지자체장은 재난기본소득을 주장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이름조차 생소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며, 바티칸에 있는 교황조차 온라인으로 미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2년 이래 근 60년 만에 4월 개학이 현실화됐다.
3월 이맘 때면 우리 귀여운 초딩들과 산뜻한 봄내음을 느끼며 서로 지지고 볶고 했을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 학교 문은 닫혀있다.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즐겁고 활력이 넘치는 귀한 시간이었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 아이들은 뭘 하고 있을까. 정말 오랜만에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으려나. 밖에 나가고 싶지만 그놈의 마스크도 챙겨 써야 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실내 공간은 갈 수 없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넌더리가 났을 수도 있겠다. 박지성, 손흥민보다 움직임이 많은 우리 초딩들에게도 어른들만큼이나 이 시간이 힘들겠지.
훗날 이 사태가 끝나면 아이들은 2020년 상반기를 어떻게 기억할까? 마스크가 이렇게 귀한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까?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 등의 행사가 취소되면 바이러스를 있는 힘을 다해 원망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사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려나?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지금의 상황에 오기까지 정말 많은 사건들과 논쟁이 있었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정부는 우한에 고립된 교민들을 전세기에 실어 국가기관에 격리를 시키기로 했다. 방역에 있어 개인의 자유를 공익을 위해 막는 가장 강력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아산과 진천 두 곳의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근방에 데려온다는 게 말이 되냐는 주장이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 시민들에게 이러한 공포가 형성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비말로 전파가 되기 때문에 침이 1km를 날아가지 않는 이상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감염이 될 확률은 없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천안으로 기 결정된 시설을 천안의 주민들이 반발하자 아산과 진천으로 변경했다는 기사부터 보도가 됐다. 그러니 아산과 진천 주민들이 뿔이 나지 않을 수가 있는가? 주민들은 트랙터로 길목을 차단하고 우한교민수용반대라는 현수막을 걸어붙였다. 이에 일부 야당 관계자도 동참을 했다. 우리는 TV를 통해 길목을 막고 있는 트랙터와 농성중인 주민들을 오랜 기간 볼 수 있었다.
WHO는 '우한 폐렴'이라는 말 대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명칭을 정립했다. 하지만 현재 실효성이 전혀 없다고 결론이 난 중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한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은 '혐중'의 정서를 사회 곳곳에 살포했다. 그들이 끝까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우한 폐렴' 혹은 '우한 코로나'다. 또, 1주일에 약 5천만장 정도의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는 현실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마스크 대란'이라는 프레임을 가져왔다. 하루에 전 국민이 한 장씩만 사용해도 공급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후 그들은 마스크를 골고루 분배하기 위해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한 정부에게 느닷없이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논평을 했다. 도대체 어쩌라는건가?
결국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들끓는 혐오와 정쟁을 노출시켰다. 우리는 TV와 포털 메인으로 이러한 기사와 사진, 영상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혹여나 우리 아이들 사이에 이만희개XX라는 말이 장난처럼 번지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 초딩들이여. 3월 23일까지는 방학이 줄어드는 것이었으니 하나도 좋을 거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수업일수가 줄어드니 그대들에게는 희소식이겠다. 힘들겠지만 우리 함께 이 사태를 극복해 내자꾸나. 4월에는 아이들을 만나 지지고 볶는 일상이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