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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ug 26. 2021

알뜰하게 살기도 정말 힘드네, 된장...

소소잡썰(小笑雜說)


4년쯤 썼더니 목숨이 깔딱깔딱하는 아내 휴대폰이 안스러워 이번에 큰 맘 먹고 대형사고를 쳐버리고야 말았다. TV에서 광고만 나오면 "저거 정말 딱 내 스탈"이라고 요즘 아내가 콧노래를 부르는 최신형 폴드폰을 자급제폰으로 몰래 질러버리고 만 것이다.


1년 전쯤, 이용 중이던 통신사 약정 만료를 계기로 아내가 알뜰폰 요금제로 갈아탄 게 기폭제가 됐다. 딱히 많이 쓰지도 않는데 사용요금이 너무 비싸다며 불만스러워 하던 참이라 알뜰폰 쪽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한달 5천원만 내면 전화와 무선인터넷을 필요한만큼 쓸 수 있는 이벤트 상품이 마침 눈에 들어왔다. 일회성이 아니라 사용기간 내내 5천원만 내면 되는 가성비 좋은 상품이었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아내는 그 이벤트 상품을 덥석 물었다. 얼추 계산해도 한 달에 35,000~40,000원은 남는 장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가 200만원 가까운 최신형 폴드폰을 질러버리는 대형사고를 칠 수가 있었다. 사전예약 할인 받고 무선이어폰 등 이벤트상품까지 챙기면 대략 150만원에 살 수 있단 계산이 나왔고, 통신사 약정 시 통신비에 기기할부금 더해 한달 10~11만원씩 나갈 거 감안하면 1년 반만 써도 무조건 남는 장사라 판단됐다.


그런 생각으로 일주일 전쯤 아내 몰래 사전예약 구매를 신청해 놨는데, 마침 어제 식구들이 모두 모여 저녁밥을 먹는 도중에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했다. 써프라이즈까진 계획에 없었지만, 모처럼 200만원짜리 대형사고를 쳤으니 사고친 김에 두 딸을 관객 삼아 제대로 써프라이즈 선물 증정식까지 벌이라는 하늘의 뜻인듯 했다.


그래서 나는 택배 상품이 문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는 즉시 밥 먹다 말고 뛰쳐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그런 나를 보며 두 딸은 호기심 어린 눈들을 빛내며 그게 뭐냐고 물었다. 아마도 아빠 표정에서 뭔가 심상찮은 사고를 쳤단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경상도 남자처럼 시크하게 "엄마 선물!"이라 짧게 답한 뒤 박스를 개봉했다.


딸들 못지않게 호기심 어린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던 아내는 "혹시 그 심전도 측정된다는 그 워치?" 하고 물어왔다. 최근 코로나 백신 1차 접종 후유증인듯 가슴 두근거림과 통증으로 큰 고생을 겪어오고 있는 터라 아내는 한 언론기사를 통해 본 '스마트워치 심전도측정 기능 덕분에 심장병 환자가 생명을 구했다'는 기사에 잔뜩 혹해 있는 중이었고, 아내가 예의 스마트워치를 입에 올릴 때마다 나는 "하나 사줘?" 하고 물어오던 터였다.


그런데 택배 상자에서 기대했던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엉뚱한 폴드폰이 튀어나오자 아내는 '이놈의 영감탱이가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대뜸 타박부터 했다. "돈도 없는데 그 비싼 걸 뭐하러 샀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박스를 뜯느라 분주한 나를 향해 "뜯지 말고 바로 반품햇!" 하고 협박성 멘트를 날렸다.


하지만 그 정도 반응쯤이야 예측 못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순순히 반품할 거면 아예 '사고'를 치지도 않았을 거였다.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일체 귀뜸도 없이 단독으로 사고를 친 거고, 원래 사고란 건 맘 먹고 한번 치기가 어려운 거지 치고 난 뒤엔 배째라 내밀며 뒷수습만 잘 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아내가 뭐라고 하건 말건 나는 단호하게 박스를 개봉했고, 누가 뜯어말릴 틈도 없이 잽싸게 보호용으로 덧붙여져 있는 필름들을 제거해 버렸다. 동시에 아내를 향해 "이젠 개봉 후라 반품 안됨"이라고 선언했다. 아내는 어이없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판단한 듯 더 이상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걸로 상황 끝, 최신형 폴드폰은 우리 식구가 됐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회사에서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근무시간 중엔 좀처럼 전화하는 일이 없는 아내인지라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새로 산 폰이 문제였다. 통신사 기기변경 같은 건 해본적 없는 아내를 위해 내가 열심히 알뜰폰 홈페이지에 접속해 관련 서류양식을 다운받고, 필요한 내용들을 기재해 이메일로 접수까지 다 해놨는데, 기재사항 중 뭔가가 잘못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거였다.


제대로 기재한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일까 싶어 물어보니 '와이파이 맥 어드레스'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와이파이 맥 어드레스는 또 누구네 집 주소인데 내놔라 마라야' 하고 툴툴대며 같은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내 폰을 부랴부랴 뒤져보니 휴대폰정보 항목에 와이파이 맥 어드레스 어쩌구 하는게 들어있었다. 아내에게 "환경설정 들어가서 휴대폰정보 열고..." 어쩌구 설명을 해주니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잠시 뒤 아내는 또 "우리가 적어보낸 일련번호가 일련번호가 아니랍니다" 하고 숨가쁜 목소리로 전화를 해 왔다.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다시 이것저것 열심히 찾아본 끝에 '시리얼넘버=일련번호'가 아니란 사실을 알아냈고, 'IMEI'라는 생소한 이름 옆에 적혀있는 게 통신사가 요구하는 일련번호란 사실을 확인해 추가로 알려줬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서류를 추가로 보내거나 아내와 통신사 간, 나와 아내 간 전화통화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게 다 비용절감을 위해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 상으로만 운영되는 알뜰폰 시스템 덕분이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있었다면 그냥 쓰던 기기와 새 기기를 들고가 매장 직원에게 유심칩 교체를 해달라 얘기하면 쉽게 끝났을 일인데, 그걸 비대면으로 메일과 전화통화에 의지해 하려다 보니 복잡하고 어렵게 일이 꼬여버린 거였다.


결국 아내와 통신사 간, 나와 아내 간 서로 다른 외계어로 10여 차례나 이메일과 전화가 오가야 했고, 그 과정 내내 서로 답답한 가슴을 움켜잡아야만 했다. 다행히 오늘 회사 일이 안 바빴기 망정이지, 바쁜 와중이었으면 아마 "알뜰폰이구 지랄이구 다 필요없어" 하는 비명이 터져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그 모든 통화 말미에 "아이쿠, 이거 알뜰하게 사는 것도 정말 힘드네, 된장..." 하는 탄식이 아내와 내 입밖으로 절로 터져나왔을까.


세상에 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는 말이 있다. 비싼 건 비싼 것대로 제 값을 하고, 싼 건 싼 대로 제 값을 한다는 말이다. 그 비싸고 싼 물건에 따라붙는 서비스 역시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알뜰폰 같은 알뜰한 물건을 곁에 두고 알뜰하게 살려면 서비스 역시 알뜰하게 밖엔 못 받는다는 사실 역시 알뜰하게 인정해야만 할 거 같다. 그래야 실망하지 않고, 그래야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알뜰폰은 가격이 알뜰할뿐 아니라 서비스도 알뜰하다는 걸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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