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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21. 2021

할머니에 의한 할머니들을 위한 미용실

아주 특별한 사진 한 장 #18

전북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원평시장 안에 자리잡은 한 미용실.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이곳은 멋을 좀 아는 인근 마을 할머니들로 북적거린다.

할머니에 의한, 할머니들을 위한, 할머니들의 미용실이라고나 할까. 


주인장만 해도 벌써 50여년째 이곳에서 미용실을 운영해오는 할머니 미용사이고, 

드나드는 손님들 역시 열에 여덟 아홉은 수십 년 단골인 할머니들이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들에겐 이곳이 최신식 설비를 갖춘 그 어느 미용실보다 편하고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마침 머리를 하러 오신 한 단골 할머니는 

"우리 큰딸이 올해 환갑인디 그 딸 신부화장을 여기서 했드랬어" 하며 

이곳 미용실과의 끈끈하고 질긴 인연을 자랑하기도 한다. 


할머니들의 사랑방을 겸한 이곳에선 즐거운 얘기들이 넘쳐난다.

갓 시집와서 시어머니한테 키가 크다며 거의 매일 구박을 받은 얘기며, 

하루는 참다 못해 "그럼 어디 가서 난쟁이 똥자루만한 며느리나 하나 구해오지, 왜 나를 델구 왔소?" 하고 당차게 들이받은 얘기,

일본놈들이 처녀만 잡아간다는 말을 듣고는 나이 열여섯에 부랴부랴 서둘러 결혼을 한 얘기 등 

100년여 시공을 넘나드는 온갖 얘기들이 미용실 문턱을 넘나든다.


그래서 이곳 미용실은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넘쳐나고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2009년에 썼던 글인데, 김제 쪽을 지날 때면 한번씩 이곳을 떠올리며 미소짓곤 합니다. 할머니 원장님을 비롯해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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