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잡썰

머리를 깎던 중 자가격리 전화가 걸려왔다

소소잡썰(小笑雜說) - 코로나 안 걸리면 학교 내 왕따란 얘기까지 나온다

by 글짓는 사진장이


설 명절을 앞두고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있을 때였다. 반 정도 잘랐나 싶었을 무렵 미용실 원장이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더니만 황망한 목소리로 "이걸 어쩌지? 이걸 어쩌지?" 하며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평소 침착한 편인 사람이 그러니까 나도 덩달아 불안해져서 "무슨 일이 있어요?" 하고 물어봤다. 그러자 원장은 "저 지금 바로 자가격리 들어가야 한대요. 이걸 어쩌죠?" 하며 난감해했다.


머리를 자르다 말고 난데없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라 나도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에 원장은 "제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거기서 확진자가 여럿 나왔대요. 제 아들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검사를 받았다고 하구요, 가족인 저도 검사결과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네요" 하고 답했다. 순간 머리 끝이 쭈뼛해지는 느낌이었다. 명절이 코앞인데 '이런 젠장!'이었다.


하지만 절반쯤 진행 중이던 머리 깎기를 중도에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예 그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앞 손님을 기다리느라 이미 30여분을 같은 공간 안에 머문 터라 이제 와 그만둔다 한들 무망한 노릇이기도 했다. 그래서 기왕 벌어진 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마음 먹고는 느긋하게 남은 머리 자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현관 문을 들어섬과 동시에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아내는 스프레이 소독제를 내 몸 구석구석까지 살포했다. 혹시라도 묻어왔을지 모르는 코로나 병균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다 죽여버리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러더니 나에게 즉시 샤워를 하라고 권했고, 그날 입었던 옷가지들은 모두 가져가 바로 세탁기에 넣어 빨아버렸다. 하루 확진자수가 1만 명을 가볍게 뛰어넘어 2만 명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됐다. 불안한 마음에 다음날 미용실이 문을 열었는지 확인하러 달려가 봤지만, 미용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입구에는 설 명절 휴무 안내문구만 덩그라니 걸려 있었다. 통상 하루면 검사 결과가 나오는 만큼 원장 아들이 음성으로 판명됐다면 이날 부로 자가격리가 해제돼 미용실 영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코로나 때문인지 명절 연휴 때문인지 미용실은 3일 간의 휴무를 예고하고 있었다.


불안불안한 가운데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됐던 건 휴무 예고일이 3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확진자나 밀접접촉자의 경우 보통 7일 정도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해당 기간 중 추가검사를 통해 음성 판정을 받아야 자가격리가 해제되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휴무 기간이 3일이란 얘기는 곧 미용실 원장 아들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추론을 가능케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가족인 미용실 원장 역시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최소 일주일 이상은 자가격리를 해야 할테니까 말이다.


내 추측은 정확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퇴근길에 그 앞을 지나가다 보니 미용실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말 다행하고 감사하게도 원장 아들은 음성 판정을 받은 게 확실했고, 덕분에 미용실도 다시 정상적인 영업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코로나에 노출됐을까 봐 며칠간 불안불안하던 내 마음도 비로소 한 시름을 놓았다. 머리를 자르다 말고 코로나 감염 위험 앞에 노출됐던 순간의 모골송연함이 다시 한 번 머리 끝을 쭈뼛거리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이 일을 겪으며 느꼈던 건 어느덧 코로나가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깝게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발생 초창기까지만 하더라도 몇 번 확진자가 어느 동네에 살고 어디어디 음식점 등을 거쳐 갔다더라 하는 정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었고, 그런 곳들을 피해 다니느라 애를 썼는데 이젠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거다. 하루 확진자수가 몇 천 단위를 넘어 몇 만 단위로 접어들자 동선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힘들어졌고, 워낙 많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확진자나 밀접접촉자 동선과 겹치게 되는 상황도 부지불식간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선 '코로나에 안 걸린 친구 = 학교 내 왕따'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려 노는 학생 치고 요즘 상황에 코로나 한 번 안 걸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 그런 친구가 있다면 학교 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거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겠지만, 그만큼 우리 주변에 코로나가 널리 퍼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예전보다 마스크 쓰기라든가 손 씻기 같은 기본기가 더 중요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누적 확진자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고, 그렇다면 우리 국민 50명 중 한 명 꼴은 코로나에 걸린 적이 있거나 현재 걸려있는 상황이고 보면 어느 누구도 안전지대에 있다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미리 예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거센 바람을 동반한 소나기처럼 피하기 힘든 대상이라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맞서 싸우는 방법 밖엔 없다.


'만일 그때 미용실에서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만일 그때 내가 귀가하는 즉시 샤워를 하고 입었던 옷을 세탁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 번씩 나는 진저리를 치곤 한다. 코로나 병균 앞에 노출된 상황에서 마스크나 샤워, 옷 세탁 같은 게 과연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없진 않지만, 그 효과 여하를 떠나 주어진 현실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일단 다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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