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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02. 2023

술자리에서 나눠야 할 건 <N빵>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MZ 세대인 딸이 얼마 전 가족끼리 소주 한 잔 먹는 자리에서 뭔가 재밌는 일이 생각났다는 듯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내게 물은 게 있다. "술자리에서 술은 안 먹고 안주만 먹는 친구가 있는데, <N빵> 할 때 술값은 빼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만날 툴툴대거든요.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나는 "합리적으로 따지자면 술을 안 먹었으니 빼주는 것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얄팍하게 계산속 챙기는 관계면 굳이 같이 술 먹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술잔을 나누는 건 관계를 나누는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내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한 번 정도면 몰라도 두 번은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술자리 친구란 생각이 들어서다.


서로 내가 술값을 내겠다며 친구들끼리 어깨를 밀쳐가며 싸움 아닌 싸움까지 벌이기 일쑤였던 <라떼>가 옳다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술자리를 함께 한다는 건 나의 취한 모습까지도 함께 나누고 서로 이해해 주겠다는 건데, 술 몇 병값까지 계산해가며 제 잇속만 챙길거면 굳이 같이 술을 마실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백번 양보해서 그게 합리적이니까 술 몇 병값까지 계산해서 N빵을 해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진짜 정말 합리적으로 각자 마신 술잔 수도 일일이 다 기록하고, 안주를 몇 개 집어먹었는가도 다 체크해서 N빵을 해야 공평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대학 시절 내 친구 중엔 꼭 그렇게 한 번 해보고 싶었던 밉살맞은 녀석이 하나 있긴 했다. 별명이 <안주킬러>였던 친구였는데, "배 고프면 공기밥이라도 하나 시켜 먹엇!" 하고 다른 친구들이 매번 권해도 죽어라고 그 비싼 안주로만 배를 채우던 녀석이었다. 


지금 같으면야 그까짓 거 하며 안주 하나 더 시키면 됐겠지만, 그때는 다들 가난했던 시절이라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덕분에 그 녀석이 초토화 시켜버린 허전한 안주 접시 혹은 냄비를 쓴눈으로 바라보며 다른 친구들은 그보다 더 쓰디 쓴 깡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술 안 마신 사람은 술값 빼줘야 하는 거 아니냐 툴툴댔다는 그 친구 잣대를 들이대면 이런 경우는 어떻게 계산하는게 맞을까. 안주 접시를 초토화시킨 예의 친구가 안주값을 다 내고, 나머지 친구들은 술병 수만큼 소주값만 N빵하면 되는 걸까?


불가에서는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만 해도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를 한다. 1겁만 해도 무려 43억 2천만 년이나 되니 500겁이면 정말 헤아리기조차 힘든 시간이다. 그런데 옷깃 스치는 것보다 몇 백만 배는 더 귀한 인연으로 만나 귀한 시간을 쪼개 무려 <술씩이나> 함께 나누는 터에 몇 푼 안 되는 술값 갖고 시비라니...


자칫 우정에 실금이 갈 수도 있으니 친구들 간에도 물론 계산은 명확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 귀한 인연으로 만나 귀한 시간을 쪼개 서로 마주하는 술자리에서 가장 확실하게 나눠야 할 건 N빵이 아니라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술 몇 병값 아끼겠다고 우정을 말아먹을 바엔 시간 아깝게 그런 술자리는 아예 갖지 않는게 낫다.


#술값N빵 #MZ세대 #합리적인사고방식 #계산은명확해야 #옷깃만스쳐도인연 #돈으로환산할수없는우정 #귀한인연 #내가낼게 #안주킬러 #글짓는사진장이 #사람이있는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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