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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29. 2023

<친하지 않은 친구>한테서 결혼식 와달란 연락이 왔다



에피소드 하나.


친하지 않은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결혼하는데, 염치없지만 네가 꼭 좀 와주면 고맙겠다"고. 그 목소리가 너무 간절해 내키진 않았지만 가주기로 했다.


가보니 직업이 변호사라는 신부 하객은 100여명인데 신랑 하객은 15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진짜 하객은  포함 2명이었고, 나머지는 하객 알바였다. 친구가 너무 고마워하며 나중에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냥 인사치레라 생각했다.


에피소드 둘.


빈말인 줄만 알았는데,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친구가 집 근처까지 찾아와 술을 샀다. 알고 보니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시에 여러 차례 실패한 후 하향 지원으로 어렵게 대학에 진학은 했으나, 자존감 하락으로 인간관계가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독서실 총무로 일하며 공시 준비를 하다가 로스쿨 학생이었던 아내와 인연이 닿아 결혼까지 골인했다. 결혼식에 와줄 친구가 너무 없어 하객 알바를 구하는 한편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던 건데 고맙게도 내가 와줬다는 거였다. 조만간 집들이를 할 건데 꼭 와달라고 했다.


에피소드 셋.


집들이에 초대 받아 친구 집에 갔다. 친구는 정말 좋아하며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댔다. 만취해 쓰러진 그를 방에 데려다 눕힌 후 집들이를 마치고 돌아나오는데, 그의 아내가 뒤따라 나오며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해왔다.


그녀는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어둡고 냉소적인 사람이었는데, 절 만나면서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끝내 걷히지 않는 어둠이 남아 있었는데, ○○씨를 만나면서 밝아졌다. 앞으로도 쭉 친구 해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친하지 않은 친구>에서 <친한 친구>로 버전업됐다.




3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이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으면서 나는 <만남은 우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다>라는 누군가 남긴 명언을 떠올렸다. 이 3개의 에피소드에 적확히 들어맞는 명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몇 년 간이나 연락 한 번 없던 동창생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선 "내 결혼식에 제발 좀 참석해줘"라고 말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갑게 외면할 거다. 축의금 몇 푼 더 챙기려는 얄팍한 수작이라 생각돼서다. 하지만 3개의 에피소드 속 글쓴이는 그 목소리에서 까닭은 몰라도 절박함을 느꼈고,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나마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 첫 번째 노력이다.


하객 알바를 써야 할 만큼 절박했던 그 친구는 글쓴이의 결혼식 참석에 정말 큰 고마움을 느꼈다. 신부 직업은 변호사인 반면 본인은 공시생에 불과해 가뜩이나 무게추가 기우는 결혼이었는데, 친한 친구 하나 없으면 더더구나 초라해질 판이었다. 그 빈 간극을 글쓴이가 채워졌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신혼여행 끝나기가 무섭게 글쓴이 집 근처까지 쫓아가 술을 사며 저간의 사정을 솔직히 털어놓는 한편  다시 한 번 백배 감사 인사를 전한 것도 그래서였을 거다. 그 두 번째 노력이었다.


남편의 마음 속 깊은 상처를 잘 알고 있던 속 깊은 아내는 아마 십중팔구 글쓴이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을 거다. 변호사까지 된 그 좋은 머리로 얼굴은커녕 생판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친구가 갑자기 절친이라며 결혼식에 이어 집들이에까지 등판한 걸 보고 모르기도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 앞에서 눈부시게 밝아진 남편 얼굴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을 거다. 힘든 과거 때문에 어두웠던 남편을 밝혀주는 사람이라면 그가 오랜 친구건 새로 사귄 친구건 상관없고, 나 또한 그를 고마운 친구로 대하겠다고... 그 세 번째 노력이었다.


덕분에 하객 알바 관계나 크게 다를 바 없던 이 두 사람은 <친하지 않은 친구>에서 <친한 친구>로 버전업됐다. 글쓴이의 배려하는 마음과 친구의 감사하는 마음, 친구 아내의 깊은 마음씀 노력이 빚어낸 좋은 결과였다. 덕분에 세 사람은 예정에 없던 좋은 친구들을 얻었고, 삶이 조금은 더 윤택해졌다.


글쓴이 입장에서 언젠가 소용이 닿을 지도 모를 믿을 만한 변호사 하나를 얻은 건 <차카게> 인생을 산 자에게 하늘이 내린 보너스쯤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 중엔 적선하는 셈 치고 결혼식 갔다가 친구 아내가 변호사인거 보고 친해지기로 마음 먹은 거 아니냐 배배 꼬인 눈으로 보는 <감동파괴자>도 있겠지만, 최첨단 라식 수술로도 배배 꼬인 눈만큼은 치료가 불가능하니 그냥 계속 그렇게 살라고 놔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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