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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y 08. 2023

"엄마도 여자랍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는 매년 이 맘 때면 아내와 나는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벌이곤 해왔다. 어머니께 드릴 카네이션을 생화로 할 건지 조화로 할 건지 하는 문제 때문이다.

아내는 "엄마도 여자란 걸 명심합시다. 세상에 꽃 싫어하는 여자는 없거든요"라며 생화로 할 것을 주장했다. 그것도 가슴에 다는 작은 꽃 한 송이 말고 기왕이면 큼직한 카네이션 꽃바구니로 하자고 했다.


자다가 떡 먹는 건 별로라 생각하지만,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 먹는다>고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아내님 말씀을 차마 거역할 수 없어 나는 처음엔 순순히 그렇게 하자고 했다. 하지만 막상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들고 가보니 어머니 반응이 영 별로였다.


"쓰잘데기 없이 비싸기만 한 꽃바구니는 뭐덜러 사왔냐?"는 첫 말씀이야 인사차 그럴 수도 있었다. 자식놈 내외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평소 이것저것 마구 사 나르는 걸 탐탁치 않아 하시는 성격이어서다.


그런데 이날은 그 정도가 많이 심했다. 평소 같음 한 마디 툭 던지고는 끝이셨는데, 같은 말을 몇 번씩 되풀이하며 영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보이시는 게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정말 마음에 안 든 모양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잽 던지 듯 혼잣말처럼 가볍게 툭 던진 어머니의 한 마디였다. "동네 할망구들 뵈주려면 이런 꽃바구니는 가슴에 달고 나갈 수도 없겠구만..." 하는 게 그거였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다른 무엇보다 <동네 할망구들> 보여줄 가슴에 다는 카네이션이 필요했던 거였다.


그렇게 어머니의 속마음을 알게는 됐지만, 아내와 나는 그 다음 해에도 또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벌여야만 했다. 꽃바구니 대신 가슴에 다는 카네이션을 준비하자는 데까진 서로 동의했지만, 이번에도 아내는 생화를 고집했다. 조화는 죽은 꽃이니 기왕이면 생화로 하자는 주장이었다.


'뭐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아내님 뜻대로 하소서!' 하는 심정으로 난 이번에도 아내 의견을 순순히 따랐다. 이번 역시 자다가 떡을 얻어먹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난 원래 자다가 떡 먹는 거 진짜 싫어하는 사람이다.


원하시던 대로 가슴에 다는 꽃으로 해드렸지만, 어머니는 이번에도 또 뭔가 불만스런 기색이셨다. 막간을 이용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채 동네 한 바퀴 휘 돌고 오셨는데, 생화다 보니 무게 중심 때문에 꽃 대가리가 자꾸 거꾸로 돌아가더라는 거다. 동네 할망구들 앞에서 <모냥 빠지게시리> 말이다.


그 다음 해부터 아내와 나는 생화 대신 조화로 된 카네이션을 준비해오고 있다. 조화는 조화로되 좀 <돋보이는> 조화를 골라 선물해 드리기로 했다. 이를테면 눈에 번쩍번쩍 잘 띄는 <금 카네이션> 같은 거 말이다.


자식놈인 우리 욕심에 불과하겠지만, 문방구 같은 데서 파는 카네이션 정도는 도저히 성에 안 차서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종류의 카네이션이 있음을 알게 됐고, 그 중 금 카네이션을 바뀐 라인업의 1번 타자로 골라봤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그냥 문방구 같은 데서 대충 하나 사오면 되지 뭐덜러 이런 비싼 걸 사왔냐?"며 또 못마땅해 하셨다. 하지만 말씀과는 달리 우릴 재촉해 금 카네이션을 곧바로 가슴에 척 다시더니만 동네 한 바퀴 돌고 오신다며 서둘러 슁 하니 나가셨다.


기대했던 대로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온 어머니 얼굴엔 만족감이 가득했다. "동네 할망구들이 그게 도대체 웬 거냐?"며 다들 부러워했다는 거다. 그 앞에서 어머니가 어떻게 대꾸했을 지는 굳이 안 봐도 알 거 같았다.


아내와 나는 올핸 한지로 고급스레 만든 카네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금 카네이션에 비해 눈에 확 두드러지는 맛은 부족하지만, 생화를 방불케 할 만큼 퀄리티가 제법 좋아 어머니가 <동네 할망구들> 앞에서 가슴 한 번 뻐기기엔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지난번 사온 금 카네이션도 고스란히 남았는데 이런 비싼 건 또 뭐덜러 사왔냐?"고 못마땅해 하실 어머니 목소리가 벌써부터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동네 할망구들> 만나러 또 슁하니 달려나가실 어머니 뒷모습도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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