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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아버지가 유일하게 부엌에 들어가는 이유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24
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17. 2021
요즘 나오는 신발들은 고어텍스니 뭐니 하는 좋은
소재들을 사용해서
방수와 방풍 등 최고의 기능성
으로 무장하
고 있지만,
내 어린 시절만 해도 고무신을 신는 아이들이 많았고
거기서 좀더
형편이 나은 경우라 해봐야 싸구려
천으로 대충 만든 운동화가 고작이었다.
다른 계절은 그래도 견딜만 했는데 항상 겨울이 문제였다.
찬 바람이 숭숭 새는 건 둘째 치고 친구들과 눈싸움이라도 하고 돌아오는 날엔
운동화가 온통 다 젖어 발에 동상 걸리기 딱 좋은 상태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에게 적잖이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요즘처럼 여벌의 신발을 몇 개쯤 갖고 살았다면 아무런 문제 될 게 없었겠지만
달랑 운동화 하나로 밑창이 다 떨어질 때까지 버텨야 했던 시절이고 보면
어머니 입장에선 난감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다음날 학교엘 가야 하는데, 하나뿐인 운동화를 다 적셔왔으니
어
머니 속이 어련했을까.
그래서 어머니에게 한참 꾸지람을 듣고 있을 때면 아버지가 나서
"애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그만 하시게나" 하고 말리곤 했다.
그러면서 내 젖은 운동화를 슬그머니 들고서는 부엌으로 향하셨다.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횡행하던 시절이라 평소 아버지는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으셨지만
내가 운동화를 흠뻑 적셔오는 날만큼은 예외였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불을 조절해가며 운동화가 타지 않도록 한참을 말리셨고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지면 부뚜막 한 켠 열기가 잘 미치는 곳에 널어 놓으셨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아버지가 잘 말려놓은 운동화를 신을 때면
발끝에서 전해져 오는 따뜻한 온기에 마음마저 따뜻해지곤 했었다.
고어텍스에 발열기능까지 갖춘 최첨단 기능성 운동화라도 견줄 수 없는 아버지 마음이,
평상시엔 그저 무뚝뚝하기만 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그 안에 담겨 있어서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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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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