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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Nov 30. 2023

4시간 줄서게 만든 돈까스 맛집 제주 <연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주도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 가족이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연돈' 돈까스였다. 몇 년 전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처음 소개된 이후부터 관심있게 지켜봐왔고, 포방터시장 수난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는 '저 집 돈까스를 우리가 꼭 먹어서 응원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해오던 참이어서다.



문제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많아도 너무 많다는 거였다. 그 결과 지난해 제주 여행 때는 전날 저녁 8시인가부터 스마트폰 앱을 통해 선착순으로 예약받는다는 커트라인조차 통과 못해 아예 예선 탈락을 해버렸고, 덕분에 연돈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아쉽게 돌아와야만 했다.



그런데 올해 여행 계획을 세우다 보니 예약시스템이 바뀌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선착순 예약 같은 광클릭에 특화된 몇몇 꾼들에게만 유리한 방식 대신 실제 이용하려는 자가 현장을 방문해 캐치테이블 기계에 예약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거다. 시간만 좀 투자하면 한번 도전해 볼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도전에 들어갔다. 원래는 앞선 이용자들의 틈새 공략 팁을 활용해 오후 3~4시쯤 방문하려 했으나, 내 무의식 어디멘가에서 '그러다 이번에도 못 먹으면 어떡할 건데?' 하는 우려와 조급증이 일었던 모양이다. 어찌어찌 가다 보니 사람이 가장 붐빌 시간인 점심시간 12시5분에 발길을 디민 걸 보면.



오전 10시부터인가 예약을 받기 시작한다고 한만큼 당연히 대기자가 줄을 잇고 있었다. 캐치테이블에 전화번호를 입력한 뒤 확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웨이팅번호 178번'이 떴을 정도였다. 12시부터 영업 시작이니 내 앞 177팀 중 단 한 팀도 아직 식사를 끝내지 못했을 타이밍이었다.



확장 이전한 덕분에 식당 좌석수도 많아졌으니 한 두어 시간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회로를 돌리며 제주실탄사격장 등에서 어중간한 시간을 즐기다가 2시 좀 넘어 연돈 돈까스를 다시 찾았다. 중간중간 캐치테이블 대기순번 변화를 체크해보니 1분에 한 팀 꼴로 줄어드는 게 보여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음을 짐작하긴 했지만, 시간에 쫓기며 돌아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그 앞에서 여유롭게 기다리기로 했다.



내심으로는 두 시간 넘게 기다리다 보면 포기하고 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도 있었다. 나 역시 그래본 적이 있고, 캐치테이블 예약이란 게 중간에 취소한다고 해서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배고픔 혹은 기다리는 일 따위 잘 못 참거나 중간에 다른 흥미거리가 생겨 포기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말씀 되시겠다.




하지만 그런 내 기대와는 달리 다들 나름 독하게 마음먹고 연돈을 찾은 모양이었다. 1분에 한 팀 꼴로 줄어들던 대기자 줄은 별다른 변화없이 꾸준한 패턴을 유지했다. 오히려 후반부로 들어가면서는 밥 먹으며 딴짓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대기줄 주는 속도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결국 우리 가족이 연돈에 입장한 건 캐치테이블로 예약도장을 찍은 오후 12시5분으로부터 220분 뒤, 즉 3시간하고도 40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나는 물론 아내와 딸 역시 일생을 통틀어 밥 한 끼 먹자고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본 건 맹세코 처음이었다.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오래 기다리느라 지친 데다가 연돈 시그니처 메뉴이자 꼭 한번 맛보고 싶었던 메뉴 치즈돈까스는 재료 소진으로 먹지 못하게 된 까닭에 기대하고 고대해 마지 않았던 메인 이벤트 돈까스 시식은 다소 맥이 빠진 상태로 진행됐다. 지나친 기다림은 건강, 아니 식욕에 안 좋은 모양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사람은 먹고 싶을 때 먹어야 만족도도 높아지는 듯하다.



어쨌거나 백프로 만족스럽진 못한 상황이었으되 그 안에서나마 최대한 다양한 맛을 즐기기 위해 우리 가족은 식구수대로 등심돈까스와 안심돈까스, 모짜치즈볼카츠 카레를 각각 하나씩 주문했다. 그리고 얼마간 기다리자 마침내, 드디어 오매불망 영접하기를 앙망해 온 연돈 돈까스님께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셨다.



상상회로 속에선 무슨 요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돈까스 접시 위에서 찬란한 후광이라도 비출 걸로 기대하기도 했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TV와 인터넷 등을 통해 익해 봐왔던 두툼한 돈까스 위로 예쁘게 잘 튀겨진 튀김옷이 입혀진 먹음직스런 한 접시가 고소한 향기를 날리며 '어서 날 잡아먹어랏!' 하고 유혹하고 있었을뿐.



음식은 원래 눈으로 한번, 코로 한번, 입으로 한번 이렇게 세번을 먹는다고 했는데, 일단 눈과 코 부문은 합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인 입 부문도 '연돈'이라는  유명세가 과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주 매우 많이 만족스러웠다. 세상엔 헛된 소문도 많은 법이지만, 오랜 세월의 필터를 견뎌내는 헛소문은 드문 법인데, 연돈에 관한 소문은 한마디로 '찐'이었던 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싶었다. 내가 오십 몇 년을 살아오면서 먹어본 돈까스 중 단연 톱이라 꼽을만 했으되, 다시 한 번 3시간 40분 동안 줄서서 기다렸다가 먹을 생각이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연코 "아니올시다" 쪽이었다. 세상에 먹어봐야 할 음식들이 얼마나 많고 즐겨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음식을 또 먹기 위해 그런 기다림을 겪는 건 낭비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지루한 기다림만 아니라면 '단연코' 다시 먹으러 갈 용의가 있다.



천려일실이라,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연돈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 싶은 두어 가지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다. 그 한 가지는 곁들임 음식으로 나온  깎두기였다. 아마도 돈까스 특유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게 주된 용도였을 건데, 그러기엔 그 맛과 풍미가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인 취향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곰탕 맛집 수준의 깎두기 맛을 기대한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설령 욕심이라 할지라도 연돈쯤 되는 맛집이라면 그 정도 퀄리티는 갖춰줬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 가지는 남자화장실 입구에 붙어있던 어이없는 안내 문구였다. <노크 먼저, 문 안잠김>이라 손글씨로 붙여놓은 게 그것인데, 화장실 안에 들어선 순간 나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소변기 없이 좌식 양변기 하나만 덜렁 놓여있었는데, 문제는 그 좌변기와 문 사이 거리가 1.5~2미터는 돼보였다는 거다. 앉아서 큰일이라도 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누군가 밖에서 노크했을 때 뛰어가서 마주 노크를 해야 할 판이었다. 이용하는 고객 입장에 서서 동선을 조금만 생각했다면 그런 어이없고 무책임한 안내 문구는 안 나왔을 거라는 아쉬운 마음이 일었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지 벌써 몇 년이 지났음에도 자만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처음과 다름없이 손 많이 가는 스타일 그대로의 돈까스를 선보이고 있는 연돈의 성실한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마 다른 많은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고 있을 거다. 그 좋은 이미지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미흡한 부분들일랑 과감히 개선해가며 연돈이 나날이 업그레이드 되는 모습으로 백년기업이 되는 그날까지 꾸준히 나아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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