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이런 과제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투척하는 순간 우리 팀 소속 네 남자는 폭탄이라도 맞은 듯 사색이 됐다. 중년의 시커먼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팀에다가 하고 많은 주제 다 놔두고 이 무슨 천인공노할 폭탄테러란 말인가 싶었다.
우리 팀원들이 난리를 치거나 말거나 교수는 아주 태연자약했다. 하기사 쉬는 날 빼곤 거의 매일 이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는 사람이니 그럴 만도 했다. 우리 팀이 보여준 반응 정도야 그의 입장에선 영사기 필름이 너덜거리도록 돌려보고 또 돌려본 낡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을 터였다.
과제를 해결 못 하면 교육이 안 끝날 판이라 우리 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별로 내키지도 않는 머리를 맞댔다. '브래지어라니, 하고 많은 것들 다 놔두고 하필이면 브래지어라니 이 빌어먹을 베이비 같으니라구...' 하는 원망이 팀원 한 명 한 명의 눈 안에 깃들어 있었다. 피교육생 신분만 아니라면 빌어먹을 교수 베이비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짐승같은 눈빛들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업무상 긴급한 연락이 와도 짧은 외출조차 허용하지 않을 만큼 융통성이라곤 1도 없는 필수교육이었고, 그걸 탈없이 잘 마무리하기 위해선 싫든 좋든 교수 베이비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사정이 그러하니 팀원 모두가 있는 머리 없는 머리 다 쥐어짜 내서라도 아내가 됐든 어디서 지나가다 귀동냥한 게 됐든 가능한 모든 관련 정보를 끌어모아 봐야만 했다.
이때 한 팀원이 별로 자신없는 목소리로 주저주저하며 "내 듣기로 여자들은 브래지어를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럽디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건 PMI 중 M, 즉 마이너스 요소에 넣으면 될 거였다. 이어 다른 팀원은 "전에 라디오를 듣다 보니 가슴 크게 보이려고 브래지어에 뽕을 넣는 사람도 많다더군요" 하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건P, 플러스 요소에 넣으면 될 거였다.
그렇게 하나씩 정리를 하다 보니 플러스 요소로는 ◇가슴 라인을 예쁘게 만들어준다 ◇보조 기구를 사용해 가슴을 커보이게 할 수 있다 등이 나왔다. 마이너스 요소로는 ◇가슴이 답답하다 ◇구입비용이 많이 든다 ◇입고 벗기 불편하다 등이 나왔다. 이를 토대로 머리를 맞대고 개선 방안 I(Interest)를 강구했더니 ◇소재를 변경해 착용 안한 듯 가볍고 편한 제품 개발 ◇보조 기구 없이도 크기 조절 가능토록 공기를 주입할 수 있는 에어 브라 제품 개발 ◇폭력, 타의에 의한 강제 탈의 시 경보 울림 및 경찰 신고, 위치추적 가능한 범죄 대응 제품 개발 등이 나왔다.
한 가지 재미 있었던 건 여기서 우리 팀이 도출한 개선 방안 중 하나인 공기를 주입할 수 있는 에어 브라 제품의 경우 몇 년 전 미국의 한 회사에 의해 개발돼 대히트를 기록했다고 교수가 설명했다. 순간 '내가 바로 그 히트 상품을 만든 아이디어 개발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아깝닷!' 하는 생각이 후두부를 강타했다. 이런 사소한 아이디어가 대박 상품을 탄생시키는 빅아이템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 탈의 시 경보 울림 및 경찰 신고, 위치추적 가능한 브래지어 제품 개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아이디어라고 교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뿐아니라 실용성 측면에서도 한 번 검토해 볼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는 거였다. 얼마간 장난기를 담아 포함시킨 항목이었는데,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니 정말 고무적이었다.
PMI 기법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느껴지는 건 세상 많은 일들이 P와 M으로 이뤄져 있고, 그것만 잘 파악하면 얼마든지 재밌게 리뉴얼해 돈 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거였다. 무심코 그냥 보아 넘기면 무심코 스쳐 지나갈 현상들이 관심있게 보고, 다시 뜯어 보고, 다른 관점으로 다시 보면 새로운 무언가로 거듭 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심코 그냥 보아 넘겼다면 아직까지도 전화와 문자 이상 기능은 갖기 힘들었을 전화기 제품이 TV와 컴퓨터, MP3 플레이어, 게임기 등을 품 안에 끌어안으면서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으로 거듭 난 것 역시 누군가 관심을 갖고 개선 노력을 기울인 덕분일 거였다.
덕분에 그걸 토대로 불과 10~20년 전까지만 해도 만화영화 속에서나 구현이 가능하다 여겨졌던 각종 웨어러블 기기들이 등장하고 있고, 10~20년 후면 인간 찜쪄 먹을 외형과 기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도 등장할 걸로 전망된다.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세상 만물은 달라지고 개선될 수 있다는 얘기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