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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Feb 06. 2024

아시아 최고의 풍어제 <위도 띠뱃놀이>


설 명절이 다가오는 매년 이 맘 때면 전북 부안 앞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 위도는 한바탕 북새통을 이루곤 한다. 설 명절 이틀 뒤인 정월 초사흗날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위도 띠뱃놀이 준비 때문이다.


부안 격포항과 위도  칠산바다를 지켜주는 용왕님께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 주민들의 무사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예로부터 칠산바다를 지켜주는 신은 개양할미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낳은 여덟 명의 딸 중 하나가 자리를 잡은 곳이 위도 대리마을 앞산 높은 곳에 위치한 당집이라고 한다. 이 당집을 중심으로 바다를 관장하는 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생업인 물고기잡이가 성업을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비는 거다.




이름에 '놀이'가 붙긴 하지만 사실 위도에서 띠뱃놀이는 놀이가 아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치르기가 무섭게 곧바로 이어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곳 마을주민들에게는 생업의 성패가 걸린 매우 중대한 제례의식이다. 섬마을의 주된 수입원인 물고기 잡이에 혹여 차질이 생기거나 조업에 나선 어부들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바탕으로 지극정성을 다해 용왕님께 잘 봐 주십사 하고 간절히 기도드리는 행사여서다.


원래는 원당제 혹은 원당굿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시대인 200~300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생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자연 그 준비과정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띠뱃놀이 전날은 의식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목욕재계를 하는 건 기본이요, 목욕 후에는 혹시라도 부정 탈까봐 소변을 볼 때도 손 대신 깎은 나무로 '그것'을 받치고 조심스레 볼 일을 봤을 정도란다. 만일 큰일을 봐야 해서 화장실을 다녀올 경우 목욕 재계 역시 다시 했다고 하니 제례에 임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정월 초사흗날 아침 일찍부터 진행되는 위도 띠뱃놀이는 원당굿을 시작으로 띠배제작, 주산돌기, 용왕제, 띠배 띄우기, 뒷풀이 순으로 의식이 진행된다. 뱃기를 든 선주(船主)와 풍물을 치는 마을 주민들, 무녀 등이 깃발을 앞세운 채 마을 앞산 높은 곳에 위치한 원당에 올라 정성껏 준비한 제물들을 진설한 다음 축문 낭독 등 제례 의식을 올리고, 이어 무당이 당굿을 벌인다.


당굿을 마친 마을 사람들은 제물을 챙겨 마을로 내려온 뒤 곧장 동쪽 바닷가로 가서 한지에 싼 용왕밥을 바다에 던지고 절을 한다. 그 뒤 풍물패를 앞세워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주산돌기를 벌이는데, 이는 원당굿을 통해 내려받은 상서로운 기운을 마을 곳곳에 널리 전파하기 위한 의식으로 보인다.




당굿과 주산돌기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 선착장에서는 남자들을 중심으로 바다에 띄워보낼 띠배가 제작된다. 띠와 짚 등을 활용해 작은 보트급 크기이긴 하나 돛대와 닻까지 달아 제법 어선 태가 나도록 열과 성을 다해 만드는데, 그 안에는 제웅인 허수아비들을 각 위치에 맞게 놓는다. 이후 무당을 중심으로 용왕굿을 벌이며, 용왕굿이 끝나고 나면 제례상에 올렸던 제물들을 조금씩 떼어 큰 함지박에 담은 뒤 마을 사람들이 풍물패와 함께 인근 바다가를 돌며 고수레를 한다. 용왕님은 물론 산천초목 등 세상 만물과 고루 잘 나눠먹고 같이 상생하자는 지극히 한국적인 풍습이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끝나면 용왕굿 제례상에 올렸던 돼지머리 등 제물을 실은 띠배를 어선에 연결해 바다 한가운데로 끌고 나가 끈을 풀어놓는다. 그러면 띠배는 망망대해로 떠내려가는데, 이때 어선에서는 풍물패와 소리꾼 등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띠배가 무사히 용왕님께 잘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조선 후기시대인 200~300년 전부터 이같은 행사를 매년 꾸준히 이어온 덕분에 위도 띠뱃놀이는 풍어제 원형이 다른 어느 곳보다 잘 남아있다고 하며, 이에 힘입어 1985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이 중요한 무형문화재가 우리나라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고 오히려 영국 등 유럽에서 '아시아 최고의 풍어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는 거다. '고양이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이용한 작가 경험담을 빌자면 2000년대 초 그는 취재차 위도 띠뱃놀이를 보러 갔을 때 우연히 마주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인류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멀리 영국에서 위도 띠뱃놀이 하나만 바라보고 찾아온 그는 1박2일 동안 전 과정을 캠코더에 담으며 매 순간 감격스러운 반응을 보였을 정도란다.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코앞에 두고도 정작 우리 자신은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중요한 무형문화재가 앞으론 더 이상 전승되기 힘들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위도 마을주민들을 통해 대대로 전승돼 온 이 띠뱃놀이는 주민수 감소와 평균연령 고령화 등과 맞물려 현재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며, 이대로 세월이 좀 더 흘러가면 뒤를 이을 사람이 없어 더 이상 명맥을 이어나가기 힘들 수도 있다는 거다.





위도 띠뱃놀이는 올해도 걸 연휴 기간이자 정월 초사흗날인 오는 2월12일 대리마을 일원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몇 년 전 내가 갔을 때만 해도 새벽 6시쯤 격포항에서 출발하는 배편이 있어 당일치기로 다녀왔었는데, 올해는 첫 배가 8시5분에나 출발한다고 하니 제대로 구경하려면 전날 미리 가는 편이 좋을 듯하다. 위도에 도착하면 배 시간에 맞춰 마을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니 굳이 카페리호에 차까지 싣고 가는 수고로움은 필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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