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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an 30. 2024

<봉분조차...>展, 관동대학살 참혹함 기록 전시

일제강점기군산역사관에서 3월31일까지 특별전시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봉분조차 헤일수 없는 묻엄>전은 참 이상한 전시회다. 전시회라는 건 원래 문자 그대로 뭔가 펼쳐 보여주는 게 목적인데, 이 <봉분조차...>는 중간중간 관람자가 수고스럽게 손으로 들춰봐야만 그 내용물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가림막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가림막들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다. '경고-충격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이, 임산부, 노약자, 심약자 등은 관람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100여 년 전인 1923년 9월에 발생한 관동대학살 때 일본에서 촬영된 참혹하게 학살되고 버려진 조선인들의 사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관동대지진이 발생해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던 그 무렵,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동경 부근의 지진을 이용해 조선인들이 각지에서 방화하는 등 불령(불평불만이 많아 멋대로 함)한 목적을 이루려고 하여, 동경에서는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를 뿌리는 자가 있다"고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계엄령을 선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 심리에 빠진 자국 국민들을 부추겨 각지에 자경단을 조직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동경과 가나가와현에서는 군대와 경찰이 중심이 돼, 지바와 사이타마현 등지에서는 자경단이 중심이 돼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심지어 경찰서 안으로 도망친 조선인들까지 쫓아 들어와 학살을 했는데, 일본 경찰은 이를 방조했을 정도였단다.




대규모 재난 발생에 따른 내부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선동해 희생양으로 삼는 전형적인 제노사이드(genocide)였다. 제노사이드란 그리스어로 인종을 뜻하는 'Genos'와 살해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Caedo, Caedare'의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집단 살해'라고 번역된다. 흑사병이 돌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을 이용해 유대인들을 집단학살한 사례 등이 이에 해당되는데, 관동대학살 역시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범죄였다.




<봉분조차...> 전시회는 총 3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는데, 제1파트인 '자연재해에서 제노사이드로'에선 1923년 9월1일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관동지방에서 발생한 리히터규모 7.9 대지진으로 말미암은 참상과, 이를 핑계 삼아 조직적으로 자행된 조선인 학살 만행을 그 당시 찍은 사진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서 내가 '이상한 전시회'라고 칭한 가림막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파트인데, 오래된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몸서리가 쳐질만큼 참혹한 모습을 담고 있는만큼 임산부나 노약자를 동반한 관람객은 주의를 요한다.




제2파트 '봉분조차 헤일 수 없는 묻엄'에서는 천승환 작가가 2017년부터 일본 현지에서 촬영한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 35기 모습이 주제별로 전시돼 있다. 이 사진들에는 집단학살 당한 조선인들을 위해 세운 위령비들 중 사건에 대한 경위가 드러나 있고,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대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사진들을 배치했다. 그중에는 집단학살 위기 속에서 조선인 일가족의 생명을 구해준 고마운 일본인들에게 바치는 감사비들도 끼어있어 눈길을 끈다.


제3파트 '체험존'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한 책과 카드를 통해 관람객들이 전시회 내용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되새겨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일환으로 전시장 한쪽 벽면엔 관람객들의 관람소감을 담은 포스트잇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어 눈길을 끄는데, 관동대학살 같은 반인륜적이고 반인간적인 범죄는 100년 200년이 지나도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역사적 범죄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되새겨주고 있다.


군산시 동국사길 21번지에 위치한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봉분조차...> 전시회는 오는 3월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입장료는 성인 1천원, 아동 500원이고,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다.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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