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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Feb 13. 2024

음력 섣달 '납월매' 홍매화 피워내는 순천 <금둔사>


해마다 이 맘 때면 봄을 기다리는 상춘객들 사이에선 봄의 전령이라 불리우는 매화 소식이 발걸음 끝을 살살 간질이곤 한다. 춥고 고단한 겨울을 한시 바삐 떨쳐버릴 수 있도록 하루라도 빨리 봄이 와줬으면 하는 마음들일 거다.


봄의 전령 매화 하면 떠오르는 여행지들이 하나둘이 아닌데, 그 중 전남 순천 금둔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매화꽃을 피워내는 걸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매화들이 빨라야 양력 2월 하순부터, 늦으면 3월 중순이 지나야 비로소 꽃을 피워내는 반면 금둔사 매화는 그보다 한두 달 빠른 음력 섣달부터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둔사 매화는 일명 '납월매'라고도 불리운다. 납월 또는 섣달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음력 12월'에 꽃을 피우는 매화라는 의미에서다. 일반 매화보다 무려 한두 달이나 앞서 꽃을 피우니 일각이 여삼추인 심경으로 목이 빠져라 봄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반가운 존재가 아닐수 없다.


대대로 큰 스님들을 많이 배출했다 하여 삼보찰 중 승(僧)보찰로 이름 높은 송광사를 비롯해 인근 지역에 선암사 등 이름 높은 천년고찰들이 자리잡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긴 했지만, 금둔사 역시 백제 위덕왕 30년인 서기 583년에 창건됐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오는 천년고찰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걸로 추정되는 석조불상과 삼층석탑 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을 만큼 한때는 매우 번창했던 절집인데, 1597년 정유재란 때 절이 모두 불타는 참화를 겪으면서 오랜 세월 명맥이 끊겼었다.




그러던 중 지난 1979년 절터에서 보물급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이 발견되면서 재창건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 발견을 계기로 태고종 종정을 지내신 지허 스님이 손수 길을 닦고 돌을 쌓으며 폐허가 된 절집을 다시 일으켜 세운 데 힘입어서다. 지허 스님은 이 무렵 인근 낙안읍성에서 600년 된 홍매화나무 씨앗 한 웅큼을 받아와 금둔사 여기저기에 뿌렸고, 그 중 6개가 살아남아 납월매라 불리우며 섣달이면 붉은 매화를 피워내곤 해오고 있단다.


최근 내가 내 컴퓨터 속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낡은 사진 디렉토리를 다시 뒤져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가며 애써 금둔사 관련 사진들을 찾아낸 건 예의 납월매와 관련해 가슴 뭉클해지는 사연을 접했던 까닭이다. 납월매로 인해 20여년 전 처음 금둔사를 찾았다가 지허 스님과도 인연을 맺었다는 한 언론사 기자가 올해는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납월매가 꽃을 피워내지 않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기사를 통해 전해온 게 그 시작점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해 기사를 죽 읽어내려가 보니 문제의 납월매를 절집 여기저기에 심으며 금둔사 제2의 창건을 이끌었던 지허 스님이 지난해 10월 입적을 하셨는데, 그뒤 어찌된 영문인지 매년 섣달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워내던 납월매가 필 때를 훨씬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통 소식이 없다는 거였다. '선농일치(禪農一致)'라는 말을 자주 하시며 '농사짓는 게 곧 참선'이라 했던 지허 스님이 홀연히 떠난 걸 매화도 아는 건가 싶더라는 거였다.


그게 사실인지 어쩐지는 납월매 본인만 아는 문제일 거지만, 옛 현인들은 꽃과 나무에도 마음이 있다 하였으니 어버이와도 같은 스님의 홀연한 떠나감을 납월매가 저만의 방식으로 슬퍼하는 거 아닌가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 했으니 그 슬픔을 이겨내고 나면 납월매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붉은빛과 한층 성숙한 자태로 더 찬란하게 피어나지 않을까 기대돼서다.


금둔사는 방문시기가 안맞아 홍매화를 담지 못했고, 다른 절집에서 핀 홍매화 사진 한 장을 가져와봤다.


남도로부터 슬슬 봄기운이 전해져오고 있는 이 계절, 혹여나 전남 순천 인근을 여행할 일이 있다면 잠시 시간을 내 금둔사 홍매화와 더불어 봄을 즐겨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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