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앞에서만 호기로운 아버지 지갑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38

by 글짓는 사진장이

퇴직해 살고 있는 선배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하나 들었다.

퇴직 후 한 번씩 참가하는 회사관련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의 대장은 바로 밥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무슨 얘기인가 궁금해 물었더니 선배 왈,

"퇴직을 하고 나면 회사 다닐 때 계급은 다 필요 없고

밥을 잘 사는 사람 뒤로 줄들을 서더라"는 것이다.


재테크를 잘해 작은 건물 혹은 가게라도 하나 장만한 덕분에

퇴직 후에도 주머니에 비교적 여유가 넘쳐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현직 때 직급이 대리나 과장이어서 부장이나 이사보다 낮았어도

우러름과 떠받듬을 받는다는 얘기였다.


현직에 있을 때와는 달리 아버지들의 주머니 사정이

크게 위축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호기는 지갑 두께에 비례하는 법이니 말이다.



사실 아버지들의 지갑이라는 건 가족들에게나 호기로운 것이지

현직에 있을 때조차도 그리 호기롭지는 못한 존재다.

분위기에 휩쓸려 어쩌다 한번 호기를 부리고 나면

거의 예외없이 몇 날 혹은 몇 달은 혼자 끙끙 앓으시곤 할 정도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호기롭지 못하신 아버지들이건만

자식이나 가족들 앞에선 어찌 그리 자주 호기를 부리셨는지,

또 그 가족들 앞에서 부리는 호기를 위해 밖에서는 또 얼마나

뒤로 숨고픈 마음과 자존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주저하며 사셨을지

두 딸의 아버지가 된 지금에서야 나는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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