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들의 스승이다

소소잡썰(小笑雜說)

by 글짓는 사진장이

딸아이가 여섯 살 때 일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작은방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딸아이가 쪼르르 내게 달려오더군요.

수다를 떠는데 정신이 팔려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더니만 그제서야 밥을 다 먹은 모양이었습니다.

밥 잘 먹은 사실을 아빠에게 자랑하는 한편, 밥을 잘 먹은 뒤면 으레 행해지는 아빠의 칭찬을 듣고 싶어 오나 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딸아이는 칭찬을 듣기 위해 달려온 게 아니었습니다.

아빠가 저지른 잘못을 나무라기 위해 그렇게 밥 먹기가 무섭게 득달같이 달려왔던 겁니다.

죄목은 밥을 다 먹은 뒤 자신이 먹은 밥그릇과 국그릇을 싱크대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지 않았다는 것이었구요.


그러니까 딸아이는 밥을 다 먹기가 무섭게 제 엄마의 평소 가르침에 따라 밥그릇과 국그릇을 부엌 싱크대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은 모양입니다.

이 과정에서 앞서 식사를 마친 아빠의 밥그릇과 국그릇이 상 위에 고스란히 놓여 있는 걸 보고는 '아빠, 딱 걸렸어!' 하고 생각한 거죠.

그 결과 아빠의 잘못을 나무라 주어야겠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밥을 다 먹은 뒤 자기가 사용한 밥그릇과 국그릇을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기가 무섭게 쪼르르 내게 달려온 것입니다.

밥을 다 먹었다는 자랑을 생략한 걸 봐도 그렇고, 내게 오자마자 대뜸 “아빠는 왜 밥그릇 국그릇을 설거지통에 안갖다 놔요?” 며 시비조로 따지고 드는 걸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빠 체면을 구긴 나는 마치 잔소리꾼 시어머니처럼 조그만게 벌써부터 잔소리를 퍼부어대는 게 얼마간 가소로웠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어린 것한테 혼나는게 못 마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다 보니 감히 한 마디 쓰다 달다 소리도 할 수가 없더군요.

그저 꼼짝없이 여섯 살배기 딸아이의 잔소리를 감내할 수 밖에요.


문제는 이게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는 겁니다.

이날 사건을 계기로 문득 각성한 딸아이는 틈만 보였다 하면 잔소리꾼 시어머니 노릇을 톡톡히 하며 제 엄마와 아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평상시 제가 잘못해 엄마 아빠에게 혼났던 걸 복수라도 하듯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들더군요.


이를테면 한번은 TV를 보던 중 악역을 맡은 연기자 하나가 하도 못되게 굴길래 무심결에 “저런 나쁜 XX 같으니라구….” 하는 말을 내가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실 한 쪽에서 무슨 놀이엔가 열중해 있던 딸아이가 쪼르르 달려오더군요.

그러더니 두 손을 허리에 척 얹고서는 “나쁜 XX는 나쁜 말인데 왜 아빠는 나쁜 XX라고 했어요?” 하고 따져 묻는 것이었습니다.

좀 억울하단 생각이 든 나는 “TV에 나오는 저 아저씨가 하도 못된 짓을 하길래 아빠가 화가 나서 그렇게 말을 한 것”이라고 변명성 해명을 해보았지만, 딸아이는 들은척 만척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쨌건간에 딸아이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나쁜 XX’ 같은 나쁜 말을 아빠가 사용했다는 사실이었고, 나쁜 말을 사용하는 것은 나쁘다는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었으니까요.

그런 확고부동한 논리를 앞세운 딸아이 앞에 나는 결국 나쁜 말을 사용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곁들여 “다시는 그런 나쁜 말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잘 지킬 수 있을 지 솔직히 자신은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딸아이 앞에서만큼은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부모의 행동이야말로 자식에겐 가장 실질적 본보기가 되는 교육이라고 했으니 맹모삼천지교까진 못하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습니다.


이렇게 잔소리꾼 시어머니 노릇을 톡톡히 해대는 딸아이 덕분에 그날 이후 우리 집안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제 엄마 아빠에게서 들은대로,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배운대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잘못을 지적하는 어린 딸아이의 눈과 입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누군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내 삶의 태도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잔소리꾼 딸 때문에, 아니 덕분에 기분 내키는대로 대충 말하고 행동하던 내 삶이 누군가의 잣대가 되고 모범이 되는 삶으로 바뀌었으니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는 옛 성현 말씀이 과연 틀린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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