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이 아니어도 괜찮아유!
소소잡썰(小笑雜說)
16강 전에서 무려 세계랭킹 1위라는 일본 선수를 통쾌하게 꺾었던 배드민턴 허광희 선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이건 뭐지' 하는 생각으로 허탈했다. 게임 상대가 앞서 허광희가 상대했던 모모타 겐코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세계랭킹 59위라는 사실 때문에 더 그랬다. 세계 1위를 꺾은 기세로 한껏 상승세를 타고 있는 허광희 선수가 설마 59위 선수에게 패할 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허탈함도 잠시였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코트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감격의 눈물을 터뜨린 과테말라의 케빈 코르돈 선수가 갑자기 내 눈길을 사로잡은 까닭이다. 금메달을 딴 것도 아니고 그저 준결승에 진출한 것뿐인데 저 선수는 뭐가 저리 감격스러울까 싶어 의아해진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경기중계 아나운서의 멘트를 듣는 순간 나는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게 됐다. 케빈 코르돈 선수는 이번이 올림픽 4번째 출전이었고, 처음으로 준결승에 올랐던 거다. 체력 소모가 큰 배드민턴 선수로는 좀 많은 편인 35살이라는 나이와 4번째 올림픽 출전이라면 충분히 그럴만 했다. 어쩌면 이번이 그의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 될 수도 있기에 더더욱 그럴만 했다.
코트 바닥을 뒹굴며 한참동안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며 그래서 나는 진심 어린 마음의 축하를 보내줬다. 비록 우리의 호프 허광희 선수를 패배로 내몬 괘씸한 상대긴 했지만, 4번이나 올림픽에 출전하는 동안 단 한번도 메달권에 들어보지 못한 무명선수의 값진 승리였기에 축하하는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체력 소모가 큰 종목 선수에겐 거의 환갑이나 다름없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기를 보여줬으니 더더욱 축하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잊고 있던 올림픽 정신이라는 걸 문득 생각했다.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날부턴가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지나치게 성적에만 연연하고 있는 올림픽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됐다.
사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들 은메달을 딴들 그게 우리가 먹고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올림픽에 관심을 갖고 열광하는 이유는 인간 육체와 정신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아름다워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노력하는 과정 따위는 도외시한채 오로지 성적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본말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돼 버렸다.
특히 우리나라는 은메달을 따거나 동메달을 따도 시상대 위에 올라 자랑스러워하거나 기뻐하긴커녕 분통한 눈물을 흘리는 사례도 종종 있어왔다. 1등 혹은 금메달이 아니면 누구도 잘 알아주지 않고, 사회로부터든 체육계로부터든 별로 인정을 못 받는 잘못된 풍토 때문이다. '아름다운 꼴찌' 같은 낭만적인 칭찬은 문학이나 드라마 같은데서나 존재할뿐 현실 세계에서는,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올림픽만큼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도, 은메달 혹은 동메달을 딴 선수도 모두 웃으며 돌아올 수 있는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란 사실을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 비록 금메달은 못땄을망정 가슴에 단 태극마크가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이 돌아오는 날 전 국민의 따뜻한 박수와 환영이 그들을 마중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