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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심부름 땐 '큰돈' 한 장을 호기롭게 건네던 아버지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40

by 글짓는 사진장이

요즘은 법적으로 금지돼 어린 아이가 심부름 하는 일이 불가능해졌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그런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농경사회 때 들판에서 새참 겸 술 한 잔씩을 걸치던 피가 이어진 건진 몰라도

그 시절 아버지들은 술집 대신 집 앞 평상 같은 데서 술판을 벌이는 일이 잦았다.

딱 한 잔만 하자며 시작된 술판은 대개 거나하게 취할 때까지 이어지기 일쑤였고

그 덕분에 준비한 술은 늘 부족하게 마련이어서 술 심부름 할 일이 생기곤 했다.


사실 술 심부름은 그 시절 나같은 어린 아이들이 가장 고대하는 일 중 하나였다.

거나하게 한 잔 하신 아버지들은 대개 호기롭게 '큰돈' 한 장을 건네며

"술 몇 병 사오고 남은 돈은 너 용돈해라" 하고 선심을 쓰시곤 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주 또는 월 단위로 용돈 받는 호사는 꿈도 못꿔본 그 무렵 아이들에게

이는 정말 복권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는 큰 행운이었다.

그래서 때론 집 앞 평상에서 아버지가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실 때면

오늘은 부디 많이 취해서 호기를 좀 부려주셨으면 하는 은밀한 바람을 갖기도 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어느덧 나도 아버지가 돼 그 시절을 곰곰 되돌아 보노라면

사실 아버지는 그때 취하셨다기보단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니었던가 싶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좋은 집, 좋은 옷에 과외다 태권도학원이다 보내주지도 못하고

따박따박 용돈도 챙겨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가난한 주머니 사정이 말이다.


어느덧 나도 아버지가 돼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게 많아지고

한정된 월급 탓에 상대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보니

술에 취한 날이면 평상시완 달리 아이들에게 한번씩 호기를 부려보는 것도

곰곰 생각해보면 미안한 마음이 그 밑바닥 어딘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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