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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ug 20. 2021

코로나 백신을 맞고 아내가 쓰러졌다

소소잡썰(小笑雜說)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경과를 예의주시했는데, 결과는 '역시나'였다. 우려했던대로 아내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몸에 이상반응을 보이더니 끝내 몸져 드러눕고야 말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뉴스를 지켜보며 우리 가족은 사실 요 며칠 동안 적지않이 긴장과 걱정을 해오고 있었다. 1차 백신 접종을 앞둔 아내 때문이었다. 평소 몸에 잘 맞지 않는 소염진통제 같은 약 한 알만 잘못 먹어도 온몸이 퉁퉁 붓는 예민한 체질을 갖고 있어서다. 대다수의 사람들 다 멀쩡한 약 한 알 갖고도 그러는데, 독하다고 소문난 코로나 백신을 아내가 과연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아내는 1차 백신 접종을 앞둔 며칠 전부터 불안감으로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될 거란 전망에 가족들을 위해 일단 백신을 맞겠다 신청해 놓긴 했지만, 과연 백신을 맞는 게 좋을지 안 맞는게 좋을지 고민과 갈등을 거듭했다. 한창 엄마 손길을 필요로 하는 스물 몇 살밖에 안된 어린(?) 딸들도 있는데, 자칫 백신 부작용으로 자기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냐는 거였다.


그러다가 결국 "나한테 혹시라도 뭔 일 생기면 딸들 자립할 때까진 새장가 절대 가지 말고 애들 잘 돌봐줘!!!" 하는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농담 같은 말 한 마디를 남긴채 비장한 표정으로 백신을 맞으러 병원을 찾았다.  "걱정도 팔자"란 말이 목구멍을 하이패스로 통과해 내 입술까지 뚫고 나가려 했지만,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다간 그 이상의 큰 손해를 보는 게 남편이란 존재임을 잘 알기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별 것도 아닌데 괜히 쫄았었네!' 하는 듯한 홀가분한 표정으로 병원 문을 나서 마중 나간 내 차에 올라탔다. 무사히 접종을 잘 마친 것은 물론 접종 후 15분 간 대기실에 머물며 이상반응 여부까지 다 확인했지만, 팔이 좀 뻐근한 것 외엔 아무 이상도 없다는 거였다.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함께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제는 그 직후 발생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는 긴장이 풀렸는지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라며 안방 침대로 가 드러눕더니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이 좀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증상이 별로 심하지 않아 일단 준비해 둔 타이레놀 한 알을 복용한 뒤 좀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는데, 다행히 아내는 가슴 답답한 게 좀 나아졌다며 이내 곤한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7~8시간이 지나 밤 12시쯤 됐을 때, 곤히 자고 있던 아내 쪽으로부터 힘들어하는 다급한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달려가 보니 아내는 가슴이 답답하다며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급히 119에 전화를 걸어 아내 증상을 설명했고, 전문 상담사의 권유에 따라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기로 결정했다.


대충 웃옷만 걸쳐 입은 채 급히 응급실로 달려가니 당직 의사가 기본적인 문진을 한 뒤 빈 침대 하나를 지정해줬다. 그러더니 잠시 후 간호사 한 명이 부리나게 쫓아와 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며 환자복 한 벌을 내밀었다. 부작용을 중화시키는 주사나 한 대 맞으면 끝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환자복씩이나 갈아입어야 한다고 들이대는 걸 보니 살짝 겁이 났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기 무섭게 링겔인지 뭔지 모를 약병 하나를 들고와 다짜고짜 팔에 꽂는 것도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이어 엑스레이실로 가 엑스레이를 찍었고, 혈액검사를 한다며 피를 뽑아갔으며, 심전도 검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코로나 백신을 맞는 데는 몇 초밖에 안 걸렸었는데, 그 몇 방울 안 되는 액체가 몸 안에 불러 일으킨 이상반응을 찾아내는 데는 그 몇 십, 몇 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정확한 원인과 치료방법만 나와준다면야 불만은 없지만 말이다.


새벽 3시 넘어까지 그 난리를 친 끝에 의료진이 내린 결론은 '이상 없음'이었다. 참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한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렸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없었기에 절반의 다행, 절반의 감사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아내에게는 아직 '이순신 장군의 열두 척 배' 못지않게 막강하고 두려운 2차 접종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2차 접종은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 뜬 눈으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 아내와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깊이 골아 떨어졌던지 출근을 위해 맞춰놓은 알람 벨소리마저 못 듣는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는데, 천만뜻밖에도 이날만큼은 '아랫층 깡패(관련 내용은 다음 링크 참조하시길. https://brunch.co.kr/@bakilhong66uhji/88)' 구세주가 돼주었다. 알람 벨소리조차 깨우지 못한 아내와 나의 깊은 잠을 독일 철학자 칸트 싸다구를 날려버릴 만큼 근면 성실한 그의 담배연기 아침인사가 깨워준 까닭이다. 덕분에 나는 비록 아침밥은 굶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지각만은 할 수가 있었다. 개똥도 약에 쓰일 때가 있다더니만….


이상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119가 적절히 자문을 잘 해준 덕분에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던 아내의 백신 1차 접종은 큰 탈 없이 잘 마무리됐다. 예정에도 없던 20만원 돈을 병원비로 날린 게 좀 아깝긴 했지만, 범퍼끼리 살짝 부딪치는 작은 교통사고 하나에도 몇십 만원은 우습게 깨지는 세상에 내 가족 건강을 위한 일에 그 정도 지출은 충분히 감내할만 하다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번에 아내가 겪은 아찔한 백신 접종 이상징후 경험이 2차 접종에선 부디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백신 접종을 기다리고 있을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작은 경험담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고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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