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시작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왜 내 뜻대로 살아지지가 않을까,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이게 최선이고 전부일까. 그러한 물음에서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외적 원인에 휘말리고 동요할 때,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후련했다. 낱말 하나, 문장 한 줄 붙들고 씨름할수록 생각이 선명해지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되는 즐거움이 컸다. 또한 크고 작은 일상의 사건들을 글로 푹푹 삶아내면서 삶의 일부로 감쌀 수 있었다. 어렴풋이 알아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생각을 글로 옮기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첫째 모닝빵 군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엄마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처음인지라 '엄마아이'로.
동글동글 반지르르 윤이 나게 잘 구워진 폭신한 모닝빵을 닮은 아이는
귀가 아주 밝고, 냄새도, 맛도, 촉감도, 세상을 마주 하는 눈의 감도도 날카로운 아이입니다.
숨이라도 돌리자 싶으면 거센 울음으로 발을 매어둡니다.
그렇게 우리 둘은 하나인 채로 자랐습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온 이곳은 아는 이 하나 없습니다.
남편이 일터로 떠나고 나면
둘만 덩그러니, 울고 웃고 그렇게 부대끼며 사는 동안
아이도 엄마아이도 조금씩 성장해 갔습니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부족한 시간,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뇌신경은 조건-반사 수준의 본능적인 활동에만 혈안이 되다 보니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것들에 틈을 내어줄 겨를이 없습니다.
동글동글 하얀 설기같이 보드라운 찐빵을 닮은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잘 웃고, 잘 자고, 잘 먹고 세상이 놀이터인
호기심 많은 아이입니다.
잠시 눈을 돌리면 다치기 일쑤입니다.
여전히 손길이 많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쳐갑니다.
2019년 겨울,
둘째의 24개월 생일날 '나'를 되찾기로 다짐합니다.
소소하지만 이런저런 계획을 세웁니다.
당도하지 않은 미래를 그려 보며 오랜만에 설렘을 느껴봅니다.
마음은 벌써 봄입니다.
2020년 봄,
고대하던 미래에 코로나가 덮칩니다.
핑크 빛 봄은 잿빛이 되었습니다.
코로나는 모두에게 크나 큰 좌절을 안겨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밖에서 뛰어놀 자유를
취업 전선에 계신 분들에게는 기회를
생업 전선에 계신 분들에게는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 많던 꿈들, 대화들, 웃음들, 활기찬 움직임들은
마스크 뒤로 사라졌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함께하는 고통,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간신히 버텨왔던 인내의 시간들,
바늘만큼의 땅을 딛고 간신히 버텨오던 '나'는
약속의 땅을 코 앞에 두고 무너졌습니다.
이 고통을 글로 토해내면 나아질까.
깊이도 방향도 없는 분노로 가득한 열정은 이내 사그라듭니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일상도 버틸만해지니 그 또한 살만해집니다.
8살, 6살 빵남매는 제 몫을 하고,
코로나가 힘을 잃은 지 오래지만
행하지 않는 수동적인 삶,
나누지 않고 소비와 소유만 하는 삶은
머리를 굳어지게 하고
귀는 어두워지게 하고
눈을 멀게 했습니다.
지난 주말 홀린 듯 글 한편을 썼습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다음날 월요일 정식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글을 읽어 주신 분들의 라이킷 알림이 울립니다.
느껴 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 피어올라 배고픈 영혼을 충만하게 채웁니다.
'나'로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곁에서 훌쩍 자란 '엄마아이'에게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되돌아보면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을 때
책상 앞에 앉아 쓰면 될 뿐이었습니다.
타닥타닥 타자만 치면 될 일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 이곳저곳,
위칸 손때 묻은 서랍에 작은 사탕 상자 속에 책갈피 사이사이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쓰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무의식은 깊은 곳에 침잠해 있던 글의 조각들을 마침내 수면 위로 띄웁니다.
하나가 떠오르기까지 오래 걸릴 뿐,
둘, 셋 줄지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부지런히 건져 올려 엮기만 했는데
백지와도 같던 화면은 깨알 같은 글들로 빼곡히 채워집니다.
내 마음의 구멍도 채워집니다.
글을 쓰라 권하던 수많은 작가들의 메아리치던 목소리가 이처럼 진실되게 느껴진 적이 없습니다.
글쓰기는
분명 나를 변화시키는 작지만 큰 움직임입니다.
책에서 길을 찾으시나요?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읽기와 생각하기와 쓰기에 대한 매우 깊은 성찰"이 담긴 산문집이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와 고민에 대한 다정한 조언집이며, 글쓰기 수업 전과 후 학인들의 변화를 기록한 수업 일지. <글쓰기의 최전선>은 '느끼'는 것에 굶주린, '나'와 '삶'의 한계를 뒤흔들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하는, 즉 글로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이들에게 함께 가보자고 건네는 따듯한 손길 같은 책이다.
<쓰기의 말들>
쓰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안 쓰고 안 쓰고 안 쓰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끄는 마중물 같은 책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의미를 발굴하는 안목과 낮고 작은 사람들과 공감하는 능력으로 자기만의 글쓰기를 선보인 저자가 니체, 조지 오웰부터 신영복, 김훈까지 쓰기에 관한 문장을 간추려 뽑았다. 글쓰기로 들어가는 104개의 문을 소개한다.
-교보문고
코로나로 아이들과 반년을 아파트에 갇혀 지내다시피 할 때, 큰 힘이 되어준 책들입니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할 때, 은유 님이 건넨 글들은 따뜻한 위로이자 큰 독려였습니다.
글은 쓰지 않고, 책만 들춰 볼 때마다 작가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이제야 죄책감을 털어냅니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에 산책을 나갈 때마다 많은 상념을 품곤 했습니다.
삶의 무게를 버티는 힘조차 나누고 쪼개어 쓴 글에 감화되었습니다.
새벽달을 보며 출근해, 밤에 뜬 달을 보며 퇴근하고
주말까지 일에 매어 있는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나이가 들수록 돈만큼 나만의 시간이 귀해집니다.
아이들이 등원하고 돌아올 때까지는
집안일을 서둘러 끝내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입니다.
호사롭기 그지없습니다.
이 시간을 귀히 여겨야겠습니다.
글을 쓰라 끊임없이 일깨워 준 모든 작가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모자람 많은 글을 올리고 세상과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 브런치스토리에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