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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테블릿 Oct 08. 2023

어느 시간 빈곤자의 변명

베란다 창문으로 한눈에 보이던 먼 산의 한 자락이 새로 들어선 아파트에 잘리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오랜 시간 빈 공터였던 자리에 공사 장비들이 부산스럽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만의 속도로 쉼 없이 지어진다.

꾸준히 흔들림 없이, 완공이라는 단 하나의 임무완수를 목표로.

아파트는 소리 없이 맹렬하게 솟아오르더니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29층 아파트 두 동, 146개의 삶을 품어줄 또 하나의 세계가 탄생했음을,

펜트하우스 부근 반짝이는 네이밍의 불빛이 새까만 우주에 새로이 탄생한 별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모닝빵군이 호텔이라 부르는 나이스한 아파트 두동은 그렇게 완공되었다.


'나는 무얼 했을까'

시간의 흐름을 자각한 순간 오싹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시간은 금이지만

모두에게 금은 아닐 것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요즘 시대에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이 느껴진다.


창밖의 세상은 너무 나도 빠르게 변해 서운할 지경이고

창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시간의 파도에 깎여나간 돌처럼 서글프다.


누군가가 무에서 유를 창조할

누군가는 그 유에 압도당한다.

시간을 흐르는 대로 뒀다간 언젠가는 나의 생각조차도 가누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효율성, 생산성이 뛰어난 경제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뭔가 능히 효율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는 맞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느린 시계를 가진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니 그 느린 시계 이용자가  아내, 며느리, 한 아이의 엄마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늘었다.

일 년에 절반 이상 바깥일로 집을 비우는 JB를 대신해 아빠의 빈자리를 메꾸기도 한다.

그 사이 세상의 시계는 더 빨라졌다.


그 느린 시계로 대여섯 명이 나누어 쓰려니 항상 궁한 시간.

시간의 대부분은 엄마와 아내, 며느리가 쓰고 남은 조각난 시간을 나와 딸이 나누 쓴다. 딸의 몫이 제일 볼품이 없다. 그래도 서운하다 말 한마디 없는 친정 부모님에게 언제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다.


시간의 쓰임대로

JB의 수고는 명쾌한 숫자로 계산되지만(금액은 명쾌하지 않을지라도)

나의 수고는

집의 향기로,

아이들의 키로,

양가 가족을 포함한 가족의 화목과 웃음 같은

존재는 하지만 실체는 없다.

항상 필요로 하지만 손에 쥐어지지 않는 나의 수고로움은 무색무취에 가깝다.

공기처럼.

당연한것.


나의 시간과 삶의 질서는

타인의 시간과 삶의 질서들에 

묻히고 밀려나고 조각나고 해체되었다.


병풍처럼 여백을 채우고 공기처럼 시간을 메운다.


'다 그렇게 사는 거다'

주어진 시간에 순응해 사는 친정어머니는 이 없다.


'왜 난 거스르지 못하는 걸까'

언제부턴가 시간에 떠밀려 흐르는 대로 살아온 나는 스스로에게 불만이다.


'이건 나의 질서가 아니야'

내가 모르는 시공간에서 만들어진 삶의 질서에 의심을 품는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과 삶의 질서를 '

의심은 합리적인 의문이 되고 하나의 결단 내리기에 이른다.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오전 2시간,

나만의 의식들을 행하며

작지만 견고한 '나의 시간과 삶의 질서' 만들기에 매진한다.



"단순한 사실 한 가지만 깨달으면 인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일상 life'이라고 부르는 건 모두 우리보다 별로 똑똑할 것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바꾸거나, 거기에 영향을 미치거나,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어 타인이 좀 더 지혜롭고 편하게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세상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스티브잡스, 1995년 아직 큰 성과를 거두긴 전인 넥스트 NeXT에서 일하던 시절 한 인터뷰에서


'한 가지 규칙에 집중하라'

그날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일 한 가지에 2~3시간을 집중하면 썩 괜찮은 하루를 살게 된다. 슬럼프 탈출에도 효과 만점이다. 주의할 것은 여기서 10분, 저기서 10분씩 조각조각을 모아 120~180분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2~3시간을 확보하면 빠른 속도로 다시 성과를 내는 영웅적인 날들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2~3시간을 한 가지에 집중하면, 반드시 그날 한 가지의 성과는 남길 수 있다고 타이탄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타이탄의 도구들: 1만 시간의 법칙을 깬 거인들의 61가지 전략



하루 2시간,  가지를 기본으로

주일(평일 기준)이면, 성과 다섯 가지

일 년이면 52주, 260 가지의 성과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이벤트로 빠지는 날이 있겠지만 노력하면 200가지 정도 가능할지도.

충분히 의미 있는 아니 대단한 숫자다.

일상의 작은 영웅이 되는 것이다.


보통 운동, 글쓰기, 서가 주를 이루지만

친정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드린다거나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최근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미니멀 라이프에 집중하고 있다.

심플한 살림에 공을 들인 시간은 또 다른 시간으로 보답해 준다.

브런치의 글들도 그렇게 채워지고 있다.

내가 원하는 성과는 소소한 것들이다.

작은 성과들이 나와 가족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작은 성과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손에 쥘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않을까.


쓰고 지우길 반복하며 나의 불만과 의심, 의문은 결국 조각난 시간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간의 빈궁함은 몸과 마음을 결박하고 해소되지 않은 욕구들을 더욱 뒤틀리게 만들었다.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떠오르는 상념을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은 망상이 되기 쉽다.

떠오르는 상념을 글로 쓰는 것은 헤아리게 된다.

선명해지는 것이 좋다.

나아가게 한다.

그렇게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질서를 다잡는다.


Keep the faith and pace

나만의 신념,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삶의 질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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