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하는 이야기
나는 글을 쓴다.
프리랜서 작가. 칼럼니스트. 때로는 에세이, 때로는 인터뷰.
하지만 정작 쓰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소설.
나는 은미다.
마흔둘. 결혼한 지 7년.
남편 민준은 회사원이다. 대기업. 안정적이다.
우리는 논현동 빌라 3층에 산다.
아이는 없다.
만들려고 했지만 안 됐고, 어느 순간 포기했다.
지금은 그냥 둘이 산다.
조용하게.
오늘도 나는 카페에 앉아 있다.
동네 카페. 2층 창가 자리.
노트북을 펼쳐놓고,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본다.
관찰한다.
작가의 습관이라고 할까.
사람들의 표정, 대화, 몸짓.
그 속에서 이야기를 찾는다.
창밖을 본다.
아래층 집.
2층.
아라가 산다.
나는 아라를 안다. 인사는 나누지만, 친하진 않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 정도.
하지만 나는 아라를 관찰한다.
오래전부터.
왜냐하면 아라는 흥미롭기 때문이다.
아라의 남편은 건축가다.
준서.
30대 후반쯤 보인다.
몇 년 전,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 아라가 소개했다.
“남편이에요. 건축가예요.”
자랑스러워했다.
“젊은 건축가상 받았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축하했다.
“대단하시네요.”
그때 아라의 얼굴은 밝았다.
그때는.
지금 아라의 얼굴은 다르다.
창밖으로 보인다.
아라가 유모차를 밀며 나온다.
아이는 두 살쯤 됐을 것이다.
아라는 피곤해 보인다.
머리는 대충 묶었고, 화장은 하지 않았다.
유모차를 밀고 슈퍼마켓으로 간다.
나는 본다.
관찰한다.
저녁이 되면 준서가 돌아온다.
가끔.
항상은 아니다.
어떤 날은 늦게 온다. 어떤 날은 안 온다.
준서가 돌아오는 날, 나는 창문으로 본다.
아라와 준서가 거실에 앉아 있다.
하지만 대화하지 않는다.
준서는 핸드폰을 본다.
아라는 아이를 돌본다.
그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나는 그걸 안다.
나는 메모한다.
노트에.
“아라와 준서. 같은 공간, 다른 세계.”
“준서는 핸드폰을 본다. 아라는 아이를 본다.”
“그들은 대화하지 않는다.”
이런 문장들.
언젠가 소설에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쓰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건 아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날.
나는 아라를 마주쳤다.
계단에서.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아라가 웃었다.
피곤한 얼굴로.
“아기 잘 크네요.”
내가 말했다.
“네. 감사해요.”
“힘드시죠?”
“조금요.”
아라는 짧게 대답했다.
“남편분은 바쁘시죠? 건축가니까.”
“네. 요즘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아라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진짜가 아니었다.
나는 안다.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의 차이를.
집에 돌아왔다.
민준은 아직 안 왔다.
여덟 시.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간단하게. 김치찌개, 밥.
민준은 아홉 시에 들어왔다.
“왔어요.”
“응.”
민준은 재킷을 벗고 소파에 앉았다.
“저녁 먹었어?”
내가 물었다.
“회식했어.”
“그래요.”
나는 혼자 먹었다.
민준은 TV를 켰다.
우리는 대화하지 않았다.
아라와 준서처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아라를 관찰하는 이유를.
왜냐하면 아라가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외롭다.
남편은 있지만,
없는 것 같다.
대화는 하지만,
진짜 대화는 아니다.
우리는 같다.
밤.
민준은 먼저 잤다.
나는 서재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빈 문서.
제목을 썼다.
“관찰자”
그리고 첫 문장.
“나는 아라를 관찰한다.”
타자를 쳤다.
“아라는 2층에 산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지만 그녀는 외롭다.”
손가락이 멈췄다.
이걸 쓸 수 있을까.
아라의 이야기를.
아니.
내 이야기를.
다음 날.
나는 또 카페에 갔다.
2층 창가 자리.
아라가 보였다.
유모차를 밀고.
슈퍼마켓에서 나왔다.
비닐봉지를 들고.
아이는 유모차에서 울었다.
아라는 달랬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울었다.
아라의 표정.
지친.
외로운.
포기한.
나는 메모했다.
“아라는 아이를 달랜다. 하지만 아이는 운다. 아라는 지쳤다. 누가 아라를 달래줄까.”
저녁.
민준이 늦게 들어왔다.
열한 시.
“회식?”
내가 물었다.
“응. 팀장이랑.”
“술 많이 마셨어요?”
“좀.”
민준은 샤워하러 갔다.
나는 설거지를 했다.
민준은 샤워하고 나와서 바로 잤다.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TV를 켰지만 보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대화 없이.
스킨십 없이.
그냥 같은 집에 사는.
룸메이트처럼.
나는 서재로 갔다.
노트북을 켰다.
어제 쓴 문서.
“관찰자”
나는 계속 썼다.
“아라의 남편 준서는 건축가다. 한때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주목받지 못한다. 그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라는 준서의 과거 영광에 기댄다. ‘건축가의 아내’라는 정체성. 그게 아라를 지탱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끝났다. 오래전에.”
나는 타자를 멈췄다.
이건 아라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내 이야기인가.
나는 민준을 생각했다.
대기업 회사원.
안정적이다.
하지만 우리 관계는?
끝났다.
오래전에.
우리는 섹스하지 않는다.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2년? 3년?
우리는 대화하지 않는다.
“회식했어.”
“그래요.”
그게 전부다.
우리는 아라와 준서와 같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나는 다시 썼다.
“관찰자는 언제나 자기 그림자를 함께 기록한다.”
“나는 아라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나를 쓰고 있었다.”
손가락이 멈췄다.
이걸 발표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아라의 이야기.
아니,
내 이야기를.
나는 저장했다.
파일 이름:
“관찰자_초고”
그리고 노트북을 껐다.
침대로 갔다.
민준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누웠다.
멀찍이.
닿지 않게.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잔다.
하지만 우리는 멀다.
나는 천장을 봤다.
나는 관찰자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기록한다.
하지만 정작 내 삶은?
나는 내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관찰하고 있는가.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일찍 나갔다.
“다녀올게.”
“조심히 가요.”
문이 닫혔다.
나는 혼자 남았다.
커피를 내렸다.
창밖을 봤다.
아라가 보였다.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오늘도 피곤한 얼굴.
나는 아라를 본다.
관찰한다.
그리고 쓴다.
하지만 발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