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균열의 문장ㅣ13장. 임신 (은서)

두 줄

by 한서

생리가 늦었다.


일주일.


이주일.


나는 알았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은서다.


변호사. 서른다섯.


도현의 애인. 6개월째.


일주일에 세 번 만난다.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서초동 오피스텔에서.


도현이 마련해준 집에서.


그리고 지금.


나는 임신한 것 같다.


약국에 갔다.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집으로 돌아왔다.


서초동 오피스텔.


화장실에 들어갔다.


테스트기를 꺼냈다.


손이 떨렸다.


2분.


기다렸다.


심장이 뛰었다.


빨리.


숨이 가빠졌다.


제발.


제발 한 줄이어라.


두 줄.


선명하게.


나는 테스트기를 봤다.


한참.


두 줄.


임신.


나는 임신했다.


도현의 아이를.


나는 주저앉았다.


화장실 바닥에.


테스트기를 쥔 채로.


눈물이 났다.


왜 울지?


기쁜 건가?


슬픈 건가?


무서운 건가?


잘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났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일어났다.


거울을 봤다.


창백한 얼굴.


붉은 눈.


나는 배를 만졌다.


여기에.


아이가 있다.


도현의 아이가.


핸드폰을 봤다.


도현에게 전화할까.


손가락이 그의 이름 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누르지 못했다.


뭐라고 말하지.


“임신했어요”?


그럼 도현은 뭐라고 할까.


나는 알았다.


도현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를.


소파에 앉았다.


창밖을 봤다.


서울.


사람들.


차들.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춰 있었다.


이 순간.


두 줄을 본 순간부터.


도현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6시에 갈게.”


오늘은 목요일.


우리가 만나는 날.


나는 핸드폰을 봤다.


답장해야 한다.


“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말해야 할까.


아니면 병원 먼저 가볼까.*


확실히 하고.


나는 답장했다.


“네. 기다릴게요.”


시간이 흘렀다.


느리게.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배를 만지며.


아이.


내 안에.


자라고 있는.


나는 생각했다.


낳고 싶다.


이 아이를.


도현의 아이를.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섯 시.


도현이 왔다.


문 열리는 소리.


“은서야.”


“응. 여기.”


도현이 들어왔다.


나를 봤다.


“왜 그래? 안 좋아 보여.”


“아니야. 괜찮아.”


도현은 내 옆에 앉았다.


내 손을 잡았다.


“무슨 일 있어?”


“아니.”


나는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도현은 내 얼굴을 봤다.


“은서야. 나한테 숨기지 마.”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거짓말.”


도현이 말했다.


“뭔데? 회사 일?”


“응. 그래. 회사 일.”


나는 거짓말했다.


쉽게.


도현은 나를 안았다.


“힘들지?”


“응.”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도현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똑똑하고 능력 있잖아. 잘 될 거야.”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지금 말할까.


지금.


“도현 씨.”


“응.”


“나…”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서웠다.


말하는 순간.


모든 게 바뀔 것 같아서.


“나?”


도현이 물었다.


“…사랑해.”


나는 다른 말을 했다.


“나도.”


도현이 말했다.


“많이.”


우리는 섹스했다.


도현은 거칠었다.


평소처럼.


하지만 나는 집중할 수 없었다.


뱃속의 아이.


괜찮을까.


해도 되는 걸까.


끝나고,


우리는 누워 있었다.


도현이 말했다.


“배고파?”


“아니.”


“뭐 시켜 먹을까?”


“도현 씨는 먹어. 나는 괜찮아.”


도현은 나를 봤다.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니야.”


“확실해?”


“응.”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눈빛.


도현은 샐러드를 시켰다.


지현이 좋아하는 곳.


음식이 왔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먹었다.


도현은 먹었다.


나는 포크를 들었지만,


먹을 수 없었다.


“왜 안 먹어?”


“입맛이 없어.”


“아프면 병원 가봐.”


“괜찮아.”


나는 샐러드를 봤다.


입덧인가.


벌써?


도현이 먼저 일어났다.


“미안해. 오늘 일찍 가야 돼.”


“응.”


“수연이 친구들이랑 저녁 약속 있대. 나도 가야 돼.”


“알겠어.”


도현은 옷을 입었다.


넥타이를 맸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봤다.


수연.


도현의 아내.


32년.


나는 생각했다.


내가 낳으면.


도현은 어떻게 할까.


수연에게 말할까.


이혼할까.


아니면.


나를 버릴까.


도현이 다가왔다.


나를 안았다.


“은서야.”


“응.”


“사랑해.”


“나도.”


“다음에 봐. 토요일에.”


“응.”


도현은 키스했다.


그리고 나갔다.


문 닫는 소리.


나는 혼자 남았다.


나는 일어났다.


화장실로 갔다.


테스트기를 꺼냈다.


쓰레기통에 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세면대 위에 있었다.


두 줄.


여전히.


나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울었다.


나는 혼자다.


도현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나는 혼자다.


다음 날.


나는 병원에 갔다.


산부인과.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왔어요.”


“검사해볼게요.”


의사가 말했다.


초음파.


차가운 젤.


의사가 화면을 봤다.


“임신 맞네요. 축하드려요.”


축하.


나는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몇 주예요?”


내가 물었다.


“5주 정도 되는 것 같네요.”


“5주.”


“네. 아직 아주 초기예요.”


의사가 설명했다.


“조심하셔야 해요. 엽산 드시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을 나왔다.


걸었다.


아무 목적지 없이.


핸드폰을 봤다.


도현에게 전화할까.


하지만 누르지 못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그가 뭐라고 할지 듣기에.


카페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주문하려다가,


멈췄다.


임신했으니까.


카페인.


“디카페인 물 주세요.”


창밖을 봤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임산부도 보였다.


배가 부른.


행복해 보이는.


남편과 손을 잡고 걷는.


나는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도현과.


아니.


불가능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서초동 오피스텔.


소파에 앉았다.


배를 만졌다.


5주.


아직 아주 작은.


하지만 자라고 있는.


나는 눈물이 났다.


미안해.


네가 태어나도.


아빠는 없을 거야.


아빠는 다른 가족이 있어.


32년 된.


나는 그냥.


애인이야.


숨겨진.


핸드폰이 울렸다.


도현이었다.


“은서야.”


“응.”


“오늘 어때? 괜찮아?”


“응. 괜찮아.”


“다행이다. 어제 안 좋아 보여서 걱정했어.”


“괜찮아.”


“토요일에 봐.”


“응.”


“사랑해.”


“…나도.”


전화를 끊었다.


나는 생각했다.


토요일.


그때 말할까.


아니면 더 기다릴까.


얼마나.


언제까지.


나는 배를 만졌다.


자라고 있다.


매일.


숨길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말해야 한다.


도현에게.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천장을 봤다.


도현은 뭐라고 할까.


“낳아.”


라고 할까.


“우리 아이니까.”


라고 할까.


“수연이랑 이혼할게.”


라고 할까.


아니.


그럴 리 없다.


나는 알았다.


도현은 말할 것이다.


“지울 수 있어?”


“아이는 안 돼.”


“미안해.”


그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낳고 싶었다.


이 아이를.


도현의 아이를.


우리의 아이를.


혼자라도.


도현이 없어도.


낳고 싶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이기적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아빠 없는 삶을 주는 것이.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미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5주밖에 안 된.


아직 보지도 못한.


하지만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이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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