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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Aug 10. 2019

물건 간수를 잘하는 타입

안경 사러 갔다가 뜻밖의 자아 발견

나사도 풀리고 검은 테가 지겨워지던 찰나 눈에 띄는 안경이 보여서 폭염을 견디며 냅다 사러 갔다. 그리고 렌즈를 맞추던 중

물건 간수를 잘하시는 편인가 봐요


라는 말을 들었다. 얼떨결에 '하핫 네'라고 뱉어놓고 곰곰이 말을 곱씹었다. 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생소한 말은 또 처음이다. 가볍게 흘려들을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단번에 간파당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는 무려 3년이나 그것도 '흠집 없이' 깔끔하게 잘 쓰셨다는 말까지 들었다. (안경을 3년 동안 썼다는 것도 몰랐다.)


근데 사실 맞다. 나조차도 까먹고 있었는데 나는 물건 간수를 잘하는 편이다. 물건을 한 번 사면 고장 나거나 해지지 않는 이상 곁에 둔다. 밖을 돌아다니는 중간중간 가방에 손을 넣어 더듬더듬 물건이 늘 두던 자리에 있나 살펴보기 때문에 잃어버릴 일도 없다. 그리고 빈티지에 대한 거부감도 적은 편이다. 공장에서 막 나와 냄새도 채 사라지지 않은 물건보다 누군가의 빛바랜 시간들이 묻은 옛것들이 주는 다정함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본 사람보다 초면인 사람이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늘 보는 사람이라 체중에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머리가 길었는지 짧아졌는지 눈치를 못 채는 것처럼.


뜻밖의 나를 돌아보게 한 오늘의 안경사는 흠집이 나거나 구부러지기 쉬운 안경을 매일매일 만지는 분이라 고객이 살아온 결도 느낄 수 있나 보다. 누구든 간에 나와 나의 역사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렇게나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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