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사러 갔다가 뜻밖의 자아 발견
나사도 풀리고 검은 테가 지겨워지던 찰나 눈에 띄는 안경이 보여서 폭염을 견디며 냅다 사러 갔다. 그리고 렌즈를 맞추던 중
물건 간수를 잘하시는 편인가 봐요
라는 말을 들었다. 얼떨결에 '하핫 네'라고 뱉어놓고 곰곰이 말을 곱씹었다. 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생소한 말은 또 처음이다. 가볍게 흘려들을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단번에 간파당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는 무려 3년이나 그것도 '흠집 없이' 깔끔하게 잘 쓰셨다는 말까지 들었다. (안경을 3년 동안 썼다는 것도 몰랐다.)
근데 사실 맞다. 나조차도 까먹고 있었는데 나는 물건 간수를 잘하는 편이다. 물건을 한 번 사면 고장 나거나 해지지 않는 이상 곁에 둔다. 밖을 돌아다니는 중간중간 가방에 손을 넣어 더듬더듬 물건이 늘 두던 자리에 있나 살펴보기 때문에 잃어버릴 일도 없다. 그리고 빈티지에 대한 거부감도 적은 편이다. 공장에서 막 나와 냄새도 채 사라지지 않은 물건보다 누군가의 빛바랜 시간들이 묻은 옛것들이 주는 다정함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본 사람보다 초면인 사람이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늘 보는 사람이라 체중에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머리가 길었는지 짧아졌는지 눈치를 못 채는 것처럼.
뜻밖의 나를 돌아보게 한 오늘의 안경사는 흠집이 나거나 구부러지기 쉬운 안경을 매일매일 만지는 분이라 고객이 살아온 결도 느낄 수 있나 보다. 누구든 간에 나와 나의 역사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렇게나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