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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Sep 09. 2017

침대를 뺐다

10년을 함께 한 침대를 뺐다


 2006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를 가면서 침대라는 걸 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늘 딱딱한 바닥에서 잤기 때문에 침대가 주는 푸근함과 아늑함이 하나의 동경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중간고사 국어시험을 망쳤을 때, 가족과 싸웠을 때, 수시합격 결과를 기다릴 때, 언제나 내 눈물을 받아주던 침대였다.


 올 봄 미세먼지가 온 하늘을 뒤덮었을 때 보란듯이 내 피부도 뒤집어졌다. 근데 이상하게도 침대에서 잘 때마다 피부 상태가 더 엉망이 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피부과를 들락거린 결과, 피부트러블의 주요인은 미세먼지보다 침대에 있는 집먼지진드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염이 있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침구 청소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10년을 열심히 안 했는데 이제와서 잘할리 만무하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기에 하는 수 없이 나는 침대를 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딘가 망설여지는 마음에 4월부터 9월까지 5개월을 더 기다렸다. 10년간의 정을 떼기까지에는 5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관계가 있다. 늘 그립고 함께 지낸 날들이 생각날만한, 그러나 여기서 끝내는 게 맞는, 그런 관계. 더 이상의 연을 유지하기엔 관계의 끈이 너무 느슨해져버린, 매듭을 짓는 게 최선인 관계. 비단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같은 시간 속 한 데 묶여있던 사물한테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바로 안다고,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래저래 침대를 못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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