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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Nov 03. 2018

상실의 상실

애정하는 카페가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 줄 알았더라면 사진 한 장으로 끝나진 않았을 텐데.

머리 속이 산만해 정리가 필요한 날, 해야할 것들에 집중해야하는 날이면 찾는 카페가 있었다.


길고 곧게 난 길을 따라 서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덕에 계절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구청 앞. 봄에는 조금은 소란스러운 새소리를 들으며, 요즘 같은 가을엔 한껏 바삭해진 플라타너스 잎을 자근자근 밟으며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방직기처럼 생긴 책상이 있어서 심심하면 발을 구를 수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였다.

대학교 3학년 말, 영화 비평문을 쓴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던 지난 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었고, 어느 프로젝트를 한다는 명분 아래 올 봄의 진한 향기를 새기던 곳이었다.


그 어떤 기억을 꺼내어봐도 마음이 따뜻해져 이내 저릿하기까지 한 장소였는데, 오늘 가보니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상실감,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후의 느낌이나 감정 상태. 사람이든 공간이든 시간이든 언젠가 잊혀지거나 사라지거나 잃어버리게 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막상 피부 곁을 스치는 날엔 그 쓸쓸함을 감당해 낼 여력이 아직 나에겐 없다.


이제는 그 앞을 지나가면, 지나갈 이유가 사라져버려 안 갈 것 같지만, 그곳엔 헛헛함만이 자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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