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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산책 Jun 27. 2024

저, 휴직하겠습니다

 보안 카드와 노트북, 충전기를 인사팀에게 반납했다. 자리를 정리하면서 생긴 짐들이 가득 들어 있던 가방에서 제일 무거웠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어깨가 한 층 가벼워졌다. 이 날은 비가 심하게 쏟아지는 날이었다. 우산을 앞으로 20도 정도 기울여 세차게 퍼붓는 비를 막아보려 했지만, 비로부터 바지와 신발을 지킬 수는 없었다. 일본에 와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3년 차에 접어들기 직전에 휴직이라니.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돌아서는 휴직은 퇴사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를 하고 한 달 정도 진행되던 연수 프로그램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회사 내에는 수십 개의 프로젝트가 존재했고, 각 프로젝트의 리더들 간의 협의를 통해 연수가 끝난 신입 사원들의 프로젝트 배치가 이뤄졌다. 내가 투입되는 프로젝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회사에는 프로젝트와 별개로 ‘반’이라는 작은 그룹이 존재했고, 이 그룹은 4-5 명의 인원이 모여서 매주 한 번, 반 정례회의라는 이름으로 각자 자신의 업무나 일상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내가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반 정례회의 시간 때 같은 프로젝트에 들어가 있던 사람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은 프로젝트가 하나 끝낼 때마다 회사를 휴직한다고 했다. 1-2년 정도 프로젝트에 기여를 하고 난 뒤, 서비스를 릴리즈한 시기에 회사를 쉴 수 있다니. 꽤 괜찮아 보였다. 게다가 휴직을 하면 월급의 2/3을 지급한다는 게 아닌가. 회사를 쉬는데 돈을 받는다고? 지금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끝이 나면 나도 잠시 휴직을 해볼까 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잠깐의 호기심에 사내 홈페이지에서 휴직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그러나 휴직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 어떤 형식으로 휴직을 신청해야 하는지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단지, 인사팀으로 문의해 달라는 문구 하나가 끝이었다. 방금 전 휴직에 대해 들었던 것에 의하면 되게 가볍게 휴직할 수 있는 느낌이었는데 휴직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숨기기라도 하는 듯이 관련 정보가 전무했다. 사내 메신저에서 조차 ‘휴직’으로 검색을 해봐도 딱히 자료가 있거나 하진 않았다.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나서부터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을 했다. 당시에는 웹페이지의 디자인을 코드로 옮기는 작업이 많았고, 관련 기능 등을 구현하는 업무가 주를 이뤘다. 직장인으로서 이는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작업을 스케줄에는 맞추되 가능한 한 잔업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업무 시간에 상당히 집중해서 작업을 했다. 장시간 앉은 채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느라 허리가 아플 때가 있었고 때때로 두통이 심하게 올 때는 잠시 회사 밖을 산책하거나 했다. 나름 팀 내에서 내가 작업 속도가 빠르다고 인정을 받았다. 기분은 좋았지만 내가 이 이상으로 무언가를 더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때부터 조금씩 지쳐갔던 걸까.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엄청 고역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한 번씩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 준비가 쉽지 않았다. 좀처럼 개선이 되는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보통 회사에는 10시까지 출근을 하곤 했었으나 이때쯤부터 출근 시간이 11시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회사에는 정해진 출근 시간 따위는 없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남들보다 늦게 출근을 하면 눈치가 보이기는 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걸어갈 때는 세상사가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날씨가 좋은 날에도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문득 “이렇게 출퇴근을 반복하다가 어느새 나는 늙어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나는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거지? 딱히 미래에 이루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회사에서 승진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딱 이 정도의 책임감에 이 정도 월급이 만족스러웠다. 다만, 회사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다 보면 점점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 커질 거란 건 알고 있었다. 그 책임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두세 달 정도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점점 더 심해졌고, 주말만 기다리는 내가 되어있었다. 주말이라고 딱히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자극적인 음식을 배가 더부룩할 정도로 먹은 뒤 기절하듯 잠이 드는 게 전부였다. 무엇인가 스트레스를 받고 나면 그냥 음식을 먹고 잊은 뒤, 다시 그 스트레스로 뛰어들어야 하는 걸 생각하면 삶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곤 했다. “도대체 왜 이런 굴레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세상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과민하게 반응을 했으며, 인간관계도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일부러 피했다. 음식으로 도피하는 일도 더욱 잦아졌다. 일본에 온 지 2년 만에 나는 8킬로나 불어나 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로 힘들거나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상황을 개선시키고 싶은 의지 자체가 내게 없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삶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하루에 수차례 스스로의 생명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을 생각을 했다. 주변사람들은 이런 나에 대해서 몰랐다. 말없이 창밖을 보거나 열차를 기다릴 때 이런 생각은 특히 심했다. 원인이 명확하다면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회사에서 인간관계가 안 좋다거나 일이 너무 힘들다거나 하는 등의 일도 없었기에 마음 집히는 구석이 전혀 없었다.


 내가 계속해서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같이 동거를 하고 있던 여자친구가 힘들어질 거란 생각에 더욱 힘들었다. 이때쯤부터 유튜브에서 우울증 관련 영상을 자주 찾아봤는데, 내가 우울증에 해당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나에게 증상을 개선시킬 의지가 없다는 걸 알 게 된 뒤로부터 병원을 다니기로 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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