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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산책 Jun 28. 2024

일본에서 병원 다니기

제가 아날로그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외국에서 병원을 가는 일은 꽤나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이유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해서 왠지 모를 심리적 저항감을 느낀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언어적인 문제에 있다.


 병의 증상이란 게 머리가 아프다든지 목이 아프다던지 어딘가 추상적인 설명을 하게 되는데 이따금 모국어인 한국어로도 쉽지 않은 증상에 대한 설명을 일본어로 해야 되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일본어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된 언어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설명을 필요로 할 때는 이를 잘 구사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인인 나의 귀에는 비챠비챠(びちゃびちゃ)든, 비쇼비쇼(びしょびしょ)든 다 엇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 구사가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일본어라면 평소에 많이 듣던 용어가 나오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의학 용어는 정말이지 생소해서 한 번 들었을 때 바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일본어 중에 한자어로 이뤄진 단어는 한국어와 발음이 비슷한 것들도 많이 있지만, 처음 의학 용어를 들었을 때 흠칫 놀라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은 한국어로 들어도 통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있다)






 첫 병원으로 집 근처에 있는 A 병원을 예약했다. 이 병원을 예약한 이유는 순전히 집이랑 가깝다는 점과 온라인으로 예약하기 쉬웠다는 것에 있었다.  첫 진료날 회사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일본에서는 정신과를 한자어 그대로 '정신과'로 표기하지 않고, '멘탈 클리닉'이라고 표현하는 곳이 많은데 한국에서 정신과를 정신의학과로 표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았다. (다만, 내가 예약한 곳은 '정신과'로 표기하고 있었다) 병원의 접수처 이모님들은 굉장히 친절했다. 그들에게 보험증을 드리자 종이 한 장을 건네받았다. 이 종이에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증상을 적어서 제출하면 됐다.



-  나의 증상에 대해 기록한 것 -

1.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듦 (과수면)

2. 과식

3. 의욕이 생기질 않음

4. 세상사를 비관적으로 보게 됨

5.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

6. 두통



 증상을 볼펜으로 기입한 뒤, 대기실에서 나의 차례를 기다렸다. 나를 제외하고도 2-3명 정도의 환자가 더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고 각자 2칸 이상의 간격을 두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들 어딘가 힘든 게 있어서 왔겠구나 싶었다. 그들은 어떤 계기로 병원에 오기를 결심했을까. 이것저것 멍하니 생각하던 중 내 이름이 불렸다. “박상,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일본에서는 친한 친구사이가 아니면 이름이 아닌 성을 부른다. 나는 일본 생활 3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박상이라고 불리는 것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대기자들 중에서 나 말고 또 다른 박상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나이가 아주 지긋하신 분이었다. 아마 외할아버지와 비슷한 연세이시거나 조금 더 젊어 보였다. 코로나 시기의 여파였을까 선생님과 나는 투명 플라스틱 판을 사이에 두고 서로 2미터 정도의 거리를 둔 뒤 마주 앉았다. 처음엔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주시려고 한 건지 내게 진료와는 관계없는 잡담을 건네셨다. 내게 재일교포냐라던가 일본어를 잘하는 편이라던가 등의 얘기를 하셨다.


 기억도 나지 않는 잡담을 15분 정도 했을까. 선생님은 안경을 치켜드시고선 눈을 가늘게 뜨시며 아까 내가 증상에 대해 적었던 종이를 쳐다보셨다. “음 이건 우울증의 증상이네요” 아, 나 우울증 맞았구나. 그런데 이렇게 바로 말씀하실 줄은 몰랐다.


 현대인의 많은 사람이 우울증 진단의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하시며 약을 먹으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는 수기로 진단서를 작성하셨다. 이 시대에 진단서를 컴퓨터가 아닌 볼펜으로 작성하는 곳이 있다는 것에 꽤나 놀랐다. 아니, 일본이라면 가능한 것일까. 진단서가 작성된 이후로도 10분 정도 정치 얘기를 하시다가 진료가 끝이 났다. 30분 진료 예약을 했었는데 잡담 시간을 포함하면 45분 가까이 진료를 봤다. 어느새 대합실에는 아까보다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자, 접수처에서 나를 불렀다. 진료 비용을 계산하려고 하니 현금만 가능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병원 진료비로 현금 결제 밖에 되지 않는 곳이 많은데,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수중에는 현금이 전혀 없었기에 접수처 이모님께 양해를 구한 뒤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현금을 뽑았다. 병원으로 되돌아가 진료비를 계산했고 처방전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보통 병원 근처 걸어서 2분 거리에는 당연히 약국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은 15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나는 우산을 쓰고 걸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 알아봤다.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아 보여 찝찝하기는 했으나 일단 정치 좋아하시는 병원장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약국에 도착해서는 1000엔이 조금 넘는 돈을 냈고, 2주 치의 약을 받았다.


 그렇게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었다. 약이 내게 잘 맞는 건지 우울감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주에 한 번씩은 우울감이 찾아왔고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약을 먹고 나면 업무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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