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산책 Jul 03. 2024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하기


 처방받은 약을 먹어도 일상은 좀처럼 평온해지지 않았다. 약을 복용하고 나면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회사에 있는 동안은 두통이 지속되었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ChatGPT-4o 가 공개되었다. 실시간으로 음성 소통이 가능한 AI를 본 것은 충격이었다. AI의 발전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고, 여기서 더 발전하게 되면 곧 ‘개발자’라는 일자리를 빼앗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힘도 남아있지 않은 내가 이에 어떤 대비를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우울증 때문에 현재가 우울했고 AI 때문에 미래가 불확실했다. 그러던 와중에 (비관적인 태도이지만) 현재도 미래도 어차피 망한 거, 먼 미래는 모르겠고 지금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요즘사’ 유튜브 채널을 많이 봤다. 여러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팟캐스트인데, 이를 보면서 인생이란 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구나라는 걸 크게 느꼈다. 그러면서 지금 하고 있는 회사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해보고 싶어졌다. 특히 왜인지 모르겠지만 도쿄의 킷사텐을 돌아다니며 글이 쓰고 싶었다. 효율적이고 빠른 게 아닌 나만의 무언가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 휴직을 하자.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휴직 자체는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 잘 못 된 선택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엔 회사로 돌아오면 됐다. 먼 선택지로 보였던 휴직은 전혀 그럴 것도 없어 보였다.


 의사 선생님께 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우선은 2개월 정도 휴직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치료 상태를 봐가면서 기간을 조정하자고 하시며 진단서를 작성해 주셨다. 나는 그대로 인사과에 휴직에 대한 의사를 밝힌 뒤, 차례대로 프로젝트 리더와 임원에게 휴직에 대해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들은 휴직 사유에 대해서 확인한 뒤, 일정을 조정하자고 했다. 내가 맞고 있던 업무를 인수인계 할 인원을 확보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와 작별하는 시간이 쉽지 않았다.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이별이 있을 때면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떠나버리곤 했다. 이런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나 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쉽지 않았다. 잘 마무리를 하고 다시 만났을 때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헤어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휴직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까지 동료들에게 휴직에 대한 사실을 얘기할 수 없었다.


 평소 자주 잡담을 하던 동료들과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이번에야말로 꼭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대화가 끝나갈 때쯤 나는 그들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고 했다. 갑자기 고백이라니, 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휴직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동료들은 엄청나게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이며 나를 쳐다봤다. "다음 주부터 휴직을 하게 되었는데요, 언제 말씀드릴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어요." 나는 몸이 안 좋아서 2개월 정도 휴직을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하는 게 미안해서 괜스레 쓴웃음이 나왔다.


 휴직 전 마지막으로 출근을 한 날은 금요일이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카라아게 정식을 먹으러 갔다. 나의 휴직 소식에 침울한 분위기가 되었다기보다 오히려 밝은 분위기에 즐겁게 떠들고 웃으면서 밥을 먹었다. 신기하게도 다들 내게 왜 휴직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일본 사회 특성상 사적인 영역에 대해서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서일까. 그렇게 우리는 점심을 먹고 오피스로 돌아왔다. 옆자리의 동료가 잡담할 사람이 없어졌다면서 내 옆에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말해주는 게 내심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오후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는 노트북과 보안카드를 반납하기 위해서 본사로 이동을 해야 했다. 팀원들은 보슬보슬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본사로 배웅해 주었다. 그들은 내게 손을 흔들며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얘기했다.

이전 02화 일본에서 병원 다니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