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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산책 Jul 10. 2024

더 이상의 출근은 없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옅은 햇빛이 얼굴을 비춘다. 휴직한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월요일. 침대에서 느지막이 일어났다. 회사를 다닐 때도 딱히 일찍 일어나는 타입은 아니었건만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 이불속에서 늦장을 부리게 된다. 반쯤 덜 뜬 눈으로 휴대폰을 찾아들고 토스에 들어가 주식을 확인한다.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익률을 보고는 베개를 끌어안는다.


 거실을 힐끔 바라보니, 키보드를 도각도각 두드리는 모니터에 비친 푸른 얼굴이 보인다. 여자친구는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아 있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건 2년이 넘어간다. 그녀는 언제나 8시 55분에 일어나서 9시 전까지 책상으로 향한 뒤 업무를 시작한다. 부지런한 사람이다. 바람직한 재택 근무자의 모습이 아닐까.






 침대에 누은 채로 유튜브를 봤다. ‘하루 딱 네 시간만 팔아도 돈을 긁어모으는 역대급 국숫집’과 같은 제목의 쇼츠를 보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11시가 되어있었다. 태생적으로 집에서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라 이 시간쯤 되면 슬슬 밖으로 나돌아 다닐 생각을 하게 된다. 자는 동안 뻗친 머릿결에 물을 발라 진정을 시키고는 콘택트렌즈를 착용한다. 딱히 가야 할 곳이라던가 가고 싶은 곳은 없지만 일단 외출을 준비하고 본다. 가방에는 노트북과 노트를 챙겼다. 아 참 책을 빼먹을 뻔했네. “사진은 찍는 사람을 비춘다”라는 책도 집어 들었다.


 일본은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장마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바깥 날씨는 35도를 웃돌고 있다. 게다가 때때로 바깥 습도가 99도일 때도 있다. (이런 날에 밖을 거닐고 있는 건 거의 물속에 잠수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적당히 반팔, 반바지를 입는 것으로 날씨와 타협을 했고, 그렇게 가방을 어깨에 걸쳐맨 뒤 여자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1층으로 내려와 아파트 밖으로 나오는 도중에 관리실을 힐끔 봤다. 관리 할아버지께서는 순찰 중이라는 푯말을 걸어두시곤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계셨다. 이 분은 항상 관리실에 계시지만 관리실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푯말을 걸어두신다. 그런 점이 왠지 모르게 귀여우시다.


 밖으로 나오니 햇빛에 눈을 뜨기가 쉽지 않다. 집 근처에는 대학교가 많은데,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대학생들이 거리에 많았다. 대학생 무리에 섞여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했으나, 날씨가 너무 더웠으므로 걷기를 포기한 채 습관적으로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아이스커피를 하나 시켜두고 노트북을 펼쳤다. “앞으로 두 달 동안 뭐 하지?” 휴직 전엔 막연하게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생각했지만, 막상 시간이 생기고 나니 선택의 자유에 몸이 압도되는 듯했다. 메모장을 켠 뒤 모니터를 한참 바라봤다. 무엇을 할지는 몰라도 내가 하는 경험에 대해서 글을 꾸준히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떠올랐고 일단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브런치에 로그인을 한 뒤, 작가 신청을 하기 위해서 글을 작성했다. 간단하게 나의 소개와 내가 쓸 글에 대해서 설명했고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신청을 하고 나니 괜스레 오늘 해야 할 일을 전부 끝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카페에서는 노트에다가 여러 글감을 휘갈기기도 했고,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으며 맘에 가는 문장에 밑줄을 치기도 했다. 옆 자리 사람이 핫도그에 뿌린 시큼한 타바스코 소스향은 나를 허기지게 만들었다. 나는 남은 커피를 홀짝 거리며 창밖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걸 바라봤다. "더 이상 출근은 없구나." 나는 내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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