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하여

20181202

by bakvoyage



예전에는 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신체와 호르몬이 나의 정신을 좌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예로 들 수 있다. 여행이라는 색다른 자극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여행 중 많이 움직이고 보는 행위는 어느 것이든 잘 이겨낼 것이라는 막연한 의지를 준다.



그 의지로 한동안 삶을 견뎌낼 수 있다.


그 미약한 엔도르핀이 사라지면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다른 곳으로 도망갈 준비를 한다.



나에게 있어서 '노여움'은 삶의 권태이고 '천박한 욕망'은 여행에 대한 갈망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행이 나를 바꿀 것이라는 아무 대가 없는 기대가 나를 천박하다 느끼도록 한다.



여행에 대한 기대가 천박한 것은 아니다. 대가 없는 바람이 싫을 뿐이다.


과거에는 그랬던 것 같다. 과거의 나를 못난 사람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지만 무던히 고통스러웠던 것에 비해 무의미한 것에 기대를 걸고 상처 받았음은 분명하다. (그 과정에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래서 나는 나의 과거도 사랑한다.) 가까운 곳 혹은 먼 곳으로의 여행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구원 비슷한 것을 바랐었다.




지금이라고 대단히 달라지거나 멋진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못난 생각들을 멋없이 적고 소소한 여행을 다닌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실체 없는 기대 때문은 아니다.


나의 여행의 이유는 대화이다.


전혀 다른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내일이면 헤어질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끔은 아주 낯선 이에게 나는 아주 밝은 사람으로 기억이 될 수도 있고 아주 재미없는 농담만 하는 사람으로 기억이 될 수도 있다.



흘러가는 것이 여행이기에 난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성향이든 내 기분에 맞춰 보여주고 떠날 수 있다. 마치 연극을 하는 기분이다. 내가 맡은 오늘의 배역은 아주 친절하고 열정적인 사람, 오늘 만난 사람들은 관객이 된다.



그 모습이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아주 많은 종류의 성격들로 구성이 되어있고, 그중 마음에 드는 모습을 고른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나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구나'와 같은 발견을 한다.


그리고 여행 중에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를 소개한다.


'안녕, 내 이름은 아무개야. 난 글 쓰는 것을 사랑해. 게으르지만'등 사소하지만 반복적인 나에 대한 소개는 점점 '아,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라고 깨닫게 한다. 그리고 나는 나를 구성하는 어떤 것들을 점점 알아가고 사랑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나에게 구원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이 변했다.


여행이 나를 탈바꿈시킨 것이 아니니 변했다 말할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던 미약한 나를 발견하게 했으니 변했다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여행은 발견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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