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득하고 찐한 코코아도 함께
오늘은 아르젠바이잔인의 가정집에 초대받는 날이라 기대를 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일이 생겨 초대받지 못했다. 매일 여기서 아침운동을 한다는 그 어른은, 대신 토요일에 시내버스를 타고 벼룩시장에 가자고 했다. 거기서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사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싼거를 사주라고 했다. 그 분은 꽤 멋쟁이다. 딱봐도 입은 모든 옷의 퀄리티가 좋아보인다. 아들이 독일에 있다고 하면서 원하면 가이드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독일에 갈 예정은 없다며 웃어보였다. 들어보니 굉장히 규모있는 대기업인듯 싶었다.
토요일 11시에 다시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선물 받는다는것보다 현지인이 추천해주는 큰 시장에 간다는 것이 더 설렜다. 같이 가면 바가지 쓸 일도 덜겠지. 거기에는 아주 멋진 옷이 많다고 했다. 그 분은 러시아어를 쓰는데, 번역기는 벼룩 시장이라고 표현했지만, 진짜 벼룩시장인지는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 큰 에코백을 가져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그 분을 기다리며 아침 운동도 하고, 불바르와 미니 베니스도 구경했다. 한시간 반정도 일찍 도착해 걸었다.
이 곳은 모든 동물이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무서웠다. 얼굴을 스치듯 가까이 나는 까마귀가 무서웠다. 귀여운 고양이가 보여 근처에 앉았더니 졸졸 따라오며 얼굴을 부빈다. 전형적인 개냥이였다.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절로 났다. 털도 아주 부드러웠다. 귀엽고 또 귀여웠다.
데니즈 쇼핑몰의 건물이 아주 멋졌다. 안에도 다 불이 켜져있고, 누가 살짝 들어가길래 나도 따라 들어가려 했더니 직원통로였나보다. 보안 검색대 직원이 있었고 얼굴을 굳혔다. 굳혔다기보다는 놀랜거 같다. 나도 깜짝 놀라서 나왔다. 아마 복합쇼핑몰 같다. 너무 일러서 들어갈 수 없나보다. 나와서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곡선을 사용한 멋진 건물이였다. 밤에는 또 화려하게 빛난다.
어른을 기다리며 걷는 와중에 미니 베니스를 만났다. 유럽풍인 건물에 산책하기 좋았다. 검색해보니 밤에 더 아름다운 모습이였다. 세때가 지나갔다. 여기서는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든 새소리가 들린다. 몰랐는데, 도시미관에 새가 매우 중요하다. 세때만 지나가면 어디든 분위기 있어 보인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 왔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계속 낮잠을 잔다. 아직도 시차적응이 안된건지, 워낙 오래 고정된 시간에 자고 깨는 편이라 여기서도 그런지 알 수 는 없다. 일찍 일어나면 노트북을 켜서 당일과 내일 일정을 짜고, 이렇게 글로 내용을 기록한다. 은근히 이렇게 기록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린다. 쓴 비용과 글을 쓰면 한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그래도 밀리면 기억나지 않을테니 최대한 매일 남기려고 한다. 아침을 놓치면 까페에 가서 쓰고는 한다.
새벽에 배가 고픈데 주방은 8시부터 열린다고 한다. 물은 룸에 있으니 강제 단식중이다. 사실 스낵은 먹어도 된다는데 첫 끼로 스낵은 영 끌리지가 않는다. 아 생각해보니 초콜렛이 있다. 나는 코코넛을 좋아하는데 코코넛 초콜릿이 있길래 하나 사봤다. 지금은 새벽 6시. 한국은 오전 11시이다. 뜯어 먹어보니 영 맛있다. 코코넛이 듬뿍 들어있다.
이 곳의 음식은 나와 맞지 않아서 고생을 꽤 하고 있다. 스프같은 하르초와 빵 사이에 양념한 고기와 야채를 버무려 넣은 도네르와 케밥, 버거와 피자가 주요 음식인 듯 하다. 같은 방 쓰는 파키스탄인도 공감한건데 음식들이 다 비슷하고 뭘 먹어도 맛이 비슷하다. 그래도 그 분은 어느정도 통하는 맛이 있는데, 난 완전 한식파에 국밥이 땡겨 죽겠다. 배달 김치찌개가 눈에 아른거린다. 지금이라면 두그릇은 먹을 텐데. 아무래도 바쿠를 벗어나면 뭐라도 음식을 해먹어야겠다. 냄비밥이라도 해서 계란후라이라도 해먹어야지.
어제는 라떼와 코코아와 시리얼로 하루 음식을 끝냈다. 이 곳은 과일이 싸다던데 거의 처음보는 과일이라 손이 가지 않고, 우유가 매우 꼬시고 맛있다. 아침에 처음 라떼를 사봤는데 너무 고소해서 깜짝 놀랐다. 코코아도 완전히 진득했다. 네스퀵에서 파는 시리얼에 우유는.. 그나마 제일 한국음식에 가까워서 계속 손이 간다. 한국 음식이라고는 있지도 않는데, 가깝다고 하는 것도 뭔가 웃기지만. 동행이 있으면 일식집도 가고 중국집도 갈텐데, 또 혼자니까 묘하게 안가게 된다.
이 곳 게스트하우스에 다른 사람들이 공용용품을 쓰는걸 보아하니, 이 곳에서는 음식을 하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 주방에 커리냄새가 찐득하게 배여있어 선뜻 음식에 손이 가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깔끔한 사람이였나..? 다른 게스트하우스도 비슷하면 미니 냄비를 하나 살 예정이다. 쌀 사서 누룽지라도 해먹어야지.. 밥을 제때 먹지 않으니까 늘 속이 허하고, 빵을 먹으면 속이 기름지고.. 어쩌란 말이냐. 하루 이만보씩 걷는데 살빠져서 갈 형국이다. 화덕에 갓 구운빵은 맛있다고 하는데 여긴 시내라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겠고, 마트에서 산 빵은 짜고 비려서 거의 다 버렸다.
여튼 강제 단식중인데 뭐 그게 더 몸에 좋다는 소리도 많으니까. 이제 슬슬 아제르에서 조지아로 넘어가야하는데 물가가 궁금해서 까페들을 돌아다니며 정보의 바다에 빠진다. 그런데 아제르에서 조지아로 넘어가는 육로 길이 막혔다는 소문이 있다. 코카서스 정보는 많지 않지만, 또 때때로 바뀌고 이 나라의 기관들은 협력이 잘 안되는 모양이다. 육로로 가야 세키를 들리는데, 세키까지 가는데만 6시간이라 모험은 부담스럽다.
빨리 투어 회사에 연락해서 세키 투어 일정을 알아보려는데, 왜때문이지 전화가 되지 않는다. 문자도 보내지지 않는다. 엊그제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전화가 잘 갔는데.. 통화로 뭐라뭐라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5GB 용량을 샀는데 일단 3GB정도 남았다는 것만 체크하고 말았다. 셰키에서 조지아 육로이동도 워낙 방법이 다양해서 어떻게 하면 된다는 방법이 잘 없고, 대부분의 후기는 2019년도에 멈춰있다.
바쿠에서 트빌리쉬로 가는 항공은 새벽 6시거나, 저녁 9시다. 조지아는 안그래도 택시 사기가 많다는데. 일행이 한 4명되면 같이 나눠서 택시비를 내면 그만이지만 또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가려면 새벽 6시에 가야 한다. 게하에서 짐빼서 어디 둘 데도 없고, 끌고 다니기도 지치고 하루를 허비할 수도 없는 노릇. 일단 조지아 대사관에 메일을 넣어본다. 아제르 대사관은 메일 주소도 없다.
여행계획이 틀어지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비행기를 타면 쉐키를 포기하고 11만원에서 13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물론 1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과 공항에서 유심이 구매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에구, 모르겠다 좀 쉬다가 생각해야지. 하도 걸어 아픈 허리를 잡고 드러누워서 친구들 인스타그램이랑 웃긴 글들을 검색해본다. 평소 같으면 낮잠이 와도 올 시간인데 딱히 오지 않는다. 음, 그렇다면..
마침 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북센터가 있길래 노트북만 가방에 넣고 이동한다. 여기도 보안요원이 짐을 검사한다. 공공 도서관인지, 입장료는 따로 없고 많은 청소년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분위기가 꽤나 고풍스럽고 예쁘다. 돌아보다 노트북을 하는 공간에 앉아 글을 쓴다. 너무 타닥거리나, 미안해진다. 굉장히 넓은 탁자에 의자는 단 4개, 덕분에 아주 편하게 노트북을 할 수 있었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핫스팟을 키고 글을 업로드한다. 슬슬 또 속이 허해서, 밑에 까페에 가보기로 한다.
아랫층 까페에서 메뉴판을 보고 고민하다 코코아를 시켜보기로 한다. 게하에서 어떤 분이 코코아를 아주 맛있게 말아먹던게 생각이 난다. 오, 굉장히 찐뜩진득하고 찐한 코코아가 온다. 천천히 마시며 와이파이를 물어봤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친절하게도 와서 알려준다. 세키에서 이박을 하고, 육로입국후 시그나기에서 일 박을 하고 트빌리쉬로 가고 싶은데, 아쉽게 시그나기에서 유심을 따로 팔 지 않는다. 세 나라는 각각 유심을 따로 사야 하고, 유플러스에서 해외 로밍이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지원되면 급할때는 로밍을 쓰면 되는데, 일 삼천원이라고 홍보하던데..뭐 와이파이는 숙소에서 사용하기로 한다.
내친김에 숙소도 이것 저것 찾아본다. 싱글룸이랑 도미토리랑 두배정도 차이가 난다. 나는 도미토리에 묵을 예정이다. 피곤할때는 싱글룸도 좋긴 하지만, 첫날은 혼성룸이고 2층에 있어서 되게 신경쓰여서 푹 못잤는데, 익숙해지니 굉장히 잘 잔다. 외국인들은 룸에서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곤 한다. 한국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엑센트가 강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발음이 들리긴 하지만 피곤할때 자기에, 걍 귀마개 끼고 잔다.
아마 지금은 비수기에 손님도 많지 않을 때라, 아마 1층 베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2층베드는 확실히 불편한데 1층 베드만 들어와도 꽤 괜찮다. 날씨가 이번주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온다. 좋으면 자연은 훨씬 아름답긴 할텐데, 이 황량함도 나름 좋다. 무엇보다 비수기라 많은 관광객들이 있지 않고, 소소하게 있는게 좋다. 북까페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당장 내일 9시 출발인데 오후 4시까지도 몇 시에 픽업하겠다는 메일이 없다는 점을 보고는 올드시티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테스 여행사 사무실이 올드시티에 있다.
마침 저번에 겉핥기마냥 대충 올드시티를 본 김에, 숙소와서 노트북을 내려놓고 카메라와 버스카드를 챙겨 출발한다. 메트로를 타고 이동하니 금방이다. 다양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저 멀리 커플이 점처럼 보이기에 넓은 풍경을 찍었는데, 와서 포토 포토 한다. 너무 친절하게 말해서 날 찍어주겠단 말인가 싶었는데, 혹시 싶어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휴지통 버튼을 클릭하니 맞다고 한다. 당황하고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여기처럼 더 리액션하면서 쏘리를 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여튼 사람들을 조심해서 찍어야 겠다.
혼자서 고즈넉한 올드시티를 걸으니 좋다. 영어로 스몰톡을 거는 사람들은 거의 관광여행사 직원이다. 다른 곳을 이미 예약했다고 하니 알았다고, 좋은 저녁 보내라면서 물러난다. 아제르 친구랑 올때는 호객행위가 거의 없었는데, 혼자오니 기프트샵 호객도 장난아니다. 한 곳은 유창한 영어로 보기만 하라면서 들어오라더니 막상 들어오니 이것 저것 두르고 난리가 난다. 딱 봐도 고급스럽고 질 좋은 핸드메이드 캐시미어 목도리를 40마낫 부르기에, 마낫이 별로 없다고 하니 30으로 깎아준다. 실크랑 다른것도 얘기하던데, 만져보니 캐시미어에 반도 못미친다. 온리원, 을 몇 번 반복하자 노 프로블럼~ 하면서 거스름돈을 남겨준다.
블로그에서 17마낫에 샀다는 글도 읽었었는데, 관광지니 아마 훨씬 비싸게 산 것일텐다. 관광지에서 파는 만큼 상품성은 있었다. 판매수완이 있는지 디자인도 너무 중동스럽지 않고, 처음 둘러준게 이 샵에서 제일 예뻤다. 한국돈으로 치면 2만원대에 이정도 퀄리티 있는 목도리를 구할순 없다. 만족하며 나와 엄마가 좋아하겠다 싶었다. 그 후로 사람들이 호객하면, 아까 구매했다는 말을 둘러대며 한시간정도 사진을 찍고, 올드시티를 맘껏 즐겼다. 늦게간 탓에 조금 있으니 조명이 켜졌다.
내부에 재즈라이브 공연을 하는 커피바가 있었는데, 물어보니 8시에 연다고 했다. 아 30분 정도만 되도 기다릴 의향이 있는데 2시간은 너무 길다. 조지아에서도 들을 기회가 있겠지, 싶어 물러난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테스 여행사를 향해 간다. 갔더니, 내일 로비에서 있을 시간을 알려준다. 다른 투어 일정도 알고 싶다고 해서봤는데, 딱히 맘에 차는게 없다. 셰키행 투어는 없다. 일단 대사관의 메일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내일 점심까지 답이 안오면 전화해봐야지.
천천히 올드시티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사힐로 온다. 메트로보다느 훨씬 오래 걸렸다. 숙소에 오니 엄청나게 피곤하다. 오늘은 따로 낮잠을 자지 않았기때문에 빨리 씼고, 졸리지만 또 글을 남기고 잔다. 10시에 거의 쓰러지듯 자고 일어나니 아침 4시다. 그래서 코코넛 초퀄릿을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기대하고 기대하던 오지 키날룩 투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