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임신이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해사하게 웃으면서 물어본다. 약아 너 다이어트 했지? 그럴리가요.. 임신했습니다. 벌써 임신 6개월이 훌쩍 넘었다. 오늘은 22주하고도 6일. 임신하면 배가 바로 나오는지 알았는데, 5개월이 넘어서야 스물스물 나오기 시작한다. 보통 만삭사진을 8개월 전후로 찍는다고 한다. 6개월부터는 주가 다르게 배가 나온다고 했다.
평소에도 통통한 편이라 임신해서 더 살찌면 어쩌지 싶은 걱정은 있었다. 근데 빠질지는 몰랐다. 임신 초기, 이제 막 알았을 8주쯤에는 3키로가 훅 쪘었다. 옆 사람들이 의심할정도로 많이 먹었다. 컨디션도 좋고, 냄새나 비위도 하나도 안상하고 정말 잘 먹었다. 처음엔 살 좀 쪄도 된다던 의사선생님이 무게를 듣더니 아기무게만 쪄야 한다고 하며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아 너무쪘나, 그땐 인위적으로 음식을 좀 줄였었다. 그땐 그랬다.
입덧은 없었는데, 소화불량이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먹으면 바로 트름이 나오고 과식이라도 하면 누가 목에 줄을 묶어둔 것처럼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12월에는 송년회가 많고, 난 외향적이라 매일 약속이 2-3개씩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먹어댔는데도 무게가 오히려 빠졌다. 친한 친구들은 애가 탔다. 친구가 임신했다는데 숟가락을 평소보다 일찍 놓았다. 밀가루같은건 더 먹지도 못했다. 하루 한끼 무겁게 먹으면 다른 끼가 안 먹고 싶을 정도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배가 계속해서 안 고팠다.
아, 입덧이 줄어드는 시기에는 소화가 잘 될거야. 난 입덧대신 이게 온거야. 임신 사실을 뭐 대대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는데, 주변에서 자꾸 예뻐진다고 했다. 목선과 턱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부르게 먹으면 꺽꺽- 트림을 하고, 불편해서 잠을 자지 못하고, 컨디션이 내내 엉망이 되었다. 보통 입덧이 16주즈음에 끝난다는데 소화불량은 갈수록 심해져갔다. 20주가 지나고 이제 슬슬 배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불안해졌다. 먹는건 두렵고, 안먹자니 아이한테 영양이 안갈까 무섭고. 체한것 같은 속에 조금이라도 자꾸 밀어넣어야 했다.
원래 몇 년간 아침마다 수영을 다니는데, 수영장이 쉬거나 주말이라 가지 않는 날에는 소화가 더 심하게 안됐다. 이제 저녁 요가도 곧 다닐 예정이다. 움직이고 나면 훨씬 나아지는데, 산책을 즐기기에 밖은 너무 춥다. 일을 그만둬서 집에서 쉬면서 말하고, 움직이는게 줄어드니 소화는 오리무중이 된다.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 번 움직여야겠다. 배고파서 점심을 먹었는데, 소화가 안되서 속이 불편하니까 억지로 낮잠을 자고, 저녁엔 자다가 새벽에 깨는게 반복된다. 밖에서 약속이 있거나 수다떨면서 먹으면 되게 잘 먹는데, 그래서 다 임신한거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는데, 집에만 있으면 꼭 그런다.
22주가 지나고 그래도 몸무게가 조금씩 늘고 있다. 지금까지는 속이 안좋으니 배는 안차고, 에너지는 주는 간식이나 과일류를 많이 먹었는데, 이제 곧 임당검사가 있어서 단것도 많이 먹으면 안된다. 어른들이 그랬다. 통통한 애들은 임신할때 살이 빠지고, 마른 애들은 찐다고. 그래서 아이 낳고나면 체질이 마르게 변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아마 내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살이고 뭐고 속이 너무 엉망이니까 하루의 질이 너무 낮아진다. 아들을 가졌던 친구들은 먹덧이 더 많이 왔다는데, 돌아서면 고기가 땡겼다는데, 난 딸을 가져서 그런가, 고기랑 밀가루는 무서워서 더 조금 먹는다.
이렇게 불편해도 몸이 마르지는 않는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어쨌든 난 밖에서 보면 여전히 통통하다. 살이 빠진것도 드라마틱하게 빠진건 아니고, 그냥 전에 알던 사람들이 오랜만에 보면 알아볼 정도랄까. 그래서 사람들이 아직 임신한걸 잘 모르는걸까.. 어쨌든 장기가 불편하니까 사람이 둔해지고 열정이 사라진다. 일하지 않고 하고 싶은거 할 수 있는 짧고도 귀한 시간인데 아까워 죽겠다. 원래 2시간 걸릴게 5시간, 6시간 걸리면서 처진다. 계속 체한거 같은 느낌. 근데 하루에 적어도 두끼는 먹으려니까 죽겠다.
그나마 개월수가 차 가면서 배가 고프고, 먹을때 왕성하게 먹을 때가 있다. 오늘같이 어제 저녁도 누룽지로 간단히 먹고, 아침 수영도 다녀왔는데도 뭘 가득 먹은것처럼 속이 부한 때도 있고. 여행을 가거나 남들이랑 놀면 더 먹고, 집에만 있으면 훨씬 덜 먹는다. 입덧이 심하면 소화불량 정도는 불편한것도 아니라는데, 와 그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지금 내 상황에서는 살이 찔래야 찔 수가 없다. 더 안타까운건 앞으로 4달이 남았고, 갈수록 심해질거라는거다.
원래도 딱히 요리해먹지 않았지만, 요즘의 주식은 누룽지다. 아주 쉰 김치나 장아찌류가 없으면 밥을 먹을수 없다. 다행이 아주 쉰 김치가 집에 많다. 누룽지는 따뜻하고 소화가 편해 그나마 잘 들어가는 음식이다. 그리고 야채류를 무조껀 곁들여 먹는다. 강제로 건강해지고 있다. 한끼는 누룽지로 가볍게 먹고, 한 끼는 남편이 요리해준 음식으로 반찬과 곁들여 나름 무겁게 먹는다. 그리고 계속 요플레나, 과일, 과자같은 간단한 간식을 집어넣고 있다.
일단은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배야 앞으로 더 나오겠지만, 갈수록 살이 더빠질까 찔까 모르겠다. 확실한건 소화불량은 심해지고 있다. 늘 건강해서 잘 몰랐는데, 몸 하나가 불편하다는건 컨디션과 집중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구나. 그래도 늘 긍정적으로 감사하는 생각을 하려 한다. 더 심할수도 있는데, 이게 어디야. 오늘은 약속이 많으니 말 많이 하고 실컷 소화시키고 와야겠다. 요가를 시작하면 더 괜찮을거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