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만드는 일은 늘 설렌다
무언가 만드는 일은 늘 설렌다. 아이를 가지고,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교육철학이였다. 평범하게 키우기는 싫다. 임신중에 다양한 해외 교육 사례를 알아보고, 아이가 크면 추적 관찰(?)하면서 어느정도 학습이 될때까지 교육에 관련된 내 철학을 가지고, 하나씩 적용해가며 또 바꿔가며 기록하고 싶었다. 혼자하면 루즈해지고, 또 육아선배들도 만나고 싶어서 스터기를 계획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아이를 위한 준비는 잘 되가고 있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거나 그저 잘 하고 있다고만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어떤 준비물보다도 이게 중요하고 급하다.
아빠가 자식 욕심이 있는 편이였다. 원가족은 나랑 동생이 가난하다고 알고 있을 정도로 참 알뜰 살뜰 했지만, 교육에는 돈을 하나도 아끼지 않았다.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나도 교육에 관심이 참 많이 간다. 평소 미술도 하고 미싱도 하고, 사진찍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 나라서 딸을 가졌다는 소식에, 약이 아가는 얼마나 예쁠까! 약이가 아가를 얼마나 예쁘게 키울까! 라는 반응이 제일 먼저 나오지만 아쉽게도 예쁘게 키울 생각은 단 하나도 없다.
할머니가 농사를 지어 시골 논바닦에 앉아 벌레를 만지고, 흙속에서 뒹굴고, 벌레를 잡아 만지는게 어릴때 주로 한 일이였다. 초등학생때는 할머니가 비닐을 하나 쥐어주며, 비닐하우스 속 개구리를 다 잡아오라는 미션을 주곤 했으니까. 첫 아이라 사랑도 있는대로 받았지만, 시골에서 구르며 큰 덕에 아주 건강하게 자랐다. 어릴때 사진을 보면 예쁜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지만, 모든 사진에 내 안광은 살아있다. 어린아이가 눈빛이..!! 라는 댓글들을 받을 정도다.
동생도 남편도 시골에서 산 덕에 아주 건강체질이다. 나는 타고난 강골에 건강체질인데, 여기에 20살부터 새벽운동까지 꾸준히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습관까지 있어서 기초체력도 아주 좋은 편이다. 그래서 삶에 있어 얻은 이점이 한두개가 아니다. 그래서 난 내 딸이, 예쁘기보다는 건강하게 컸으면 좋겠고, 그러기위해서는 어느정도 막 커야 하고 결핍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모들은 내게 가성비가 좋은 딸이라 말한다. 아무도 우아하게 안 키웠는데 혼자 우아하게 컸다고. 예쁨이라는건 나이가 들면서 이루기 더 쉬운 가치다. 30대가 되면 20대보다 내가 뭐가 잘 어울리는지, 어떤 행동이 매력있게보이는지 파악하기가 쉽다. 물론 풋풋한 젊음을 재현할수는 없지만 돈을 벌면서 물리적 변형도 하기 쉬워지고, 관리는 더 쉬워진다. 지금 내 삶만 보면 다들 곱게 자랐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 어릴때부터 삽질하고, 비료 나르고, 사다리 타고, 전기드릴 박으면서 컸다. 우리아빠는 꼭 이럴때 양성 평등적이다. 우아함, 아름다움등은 어느정도 선택이 가능한 가치다.
건강은 감가상각이 있다. 그래서 갈수록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30대가 되면 20대보다 건강을 지키기가 훨씬 힘들다. 체력이 안좋으면 운동을 해야하는데, 체력이 안좋아서 운동을 할 수가 없다. 연쇄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체력은 어릴때 기르는 거라는 말에 십분 동의한다. 별 운동을 다 해봤는데, 결국 끝까지 남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물론 오로지 노력으로 쌓아올린 대단한 사람들도 있고 난 그들을 경외한다. 하지만 여전히, 어릴때 구르는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sns가 발달하면서 아이들이 나보다 옷을 잘 입는다. 어른같은 옷들도, 별 브랜드 옷들도 뭐그리 많은지. 엄마아빠보다 더 많이 버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근데 나는 예쁘게 키우고 싶지 않다. 막 키우고 싶고, 독립적으로 키우고 싶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 낳으면 다 다르다지만.. 지금은 그렇다. 내가 욕심내는건 그런게 아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 천귀저기다. 물론 내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우리 엄마도 했기 때문에 왠만하면 가능할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일을 그만두고 가장 먼저 준비하는게 교육스터디였다. 일단 12월에 친구 2명과 함께 미팅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각자 알아서 해외 육아/교육사례를 공부하고,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는 교육 스터디다. 공부는 논문이든 책이든 유튜버든 상관이 없다. 본인 관심사에서 하면 되지만 출저를 남기고 요약해서 내용을 공유하면 된다. 나는 첫 책으로 스웨덴 육아를 골랐고, 남성 5명이 모인 점심시간에서 아이 2명을 케어하는게 자연스러운 나라라는 문구가 인상깊었다.
사실 교육철학이라는건 아이가 없을때부터 미리 준비하는게 더 이상적이다. 그래서 신청자들은 미혼과 남성도 모두 가능하다. 평일 오전에 진행되지만 교대근무가 많은 지역이라 어쩌면 미혼이나 남성들도 참여할지 모른다. 신청자들은 자기소개나 교육철학에 관련된 에세이를 a4한장 분량으로 적어서 나에게 디엠을 보내주라는 포스터를 제작해서 당근마켓에 올렸다. 우리는 결이 맞는 3명정도를 선정해서 총 6명이서 운영할 예정이다. 아이 엄마들이 있으면 변수가 많아 6명에서 2명쯤은 참석 못할거라고 생각했고, 회당 4명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운영하는 스터디들은 형태는 자유롭고, 내용은 꽤 빡센 편이다. 하다 말 사람같으면 애초에 안받는게 좋다. 써머리를 하면서 스트레스 안받으려면 원래 어느정도 글을 쓰는 사람이 좋고, 우리 셋 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어서 sns 운영자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좋아서 에세이를 받기로 했다. 신청에 어느정도 문턱을 준 거다. 물론 아무도 신청안할수도 있지만, 교육철학으로 논의하는 스터디는 보통 잘 없기에 매력적인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만 오면 좋겠다.
책을 읽다 '페다고지'라는 단어가 나왔다. 국어교육과에 재학할때 꽤 들었던 듯, 낯익은 단어였다. 페다고지는 어린이와 지도하다의 합성어로 어린이를 가르치는 방법, 즉 교육 철학을 뜻한다. 이름도 마침 뜻이 잘 맞았다.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흔하게 쓰이는 단어였다. 독특한 이름이기도 하고 명사라 깔끔하기도 해서 동의를 구했고, 모두 동의해주어서 스터디 이름을 확정할 수 있었다.
다음주 화요일, 첫 스터디가 있다. 참여 신청자가 있다면 에세이를 공유하고 선별하기도 해보려 한다. 나중에는 정말 유명해지는거 아니야? 라고 김칫국도 마셔가면서.. 좋은 육아동지들을 만날수 있기를 바라면서, 무엇보다 나만의 교육 철학을 만들고 기록하는 과정들을 즐기기를 기대하면서. 처음 뭔가를 만들어서 해보는건 늘 의미있고 기대된다. 다음주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그간 열심히 책을 읽어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