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나 꼭꼭 야무지게 밟아가며 살자
여행길에 들러 신년운세나 가볍게 보려던 길이였는데, 친구의 지인이 소름 끼치게 맞았다는 그 집은 생각보다 유명한 집이었다. 간판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시골길 한 가정집에 새벽부터 들려 예약을 하고도 해가 지는 시간에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기대보다 피곤함이 밀려오는 야트막한 시간에야 조르르, 그분의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재미로 신년운세를 보고는 했는데 여기는 뭔가 좀 달랐다. 점집도 아니고 무당도 아니고 기철학이라고 했다. 귀동냥을 하던 곳들과는 내용도 판이하게 달랐다. 그냥 올해가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인생을 엿보게 된 느낌이랄까. 생년월일만 듣고도 속 시원하게 인생을 줄줄 읖는 그분의 서두는 치열하게 산 삶이 섭섭할만치 구구절절 맞았다.
기생 중의 기생 사주라, 잔재주가 넘쳐흐른다는 말과 꼭 예능으로 가야 한다는 말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실제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영상도 제작하고 있으며, 본업은 문화기획이니까. 어쩌면 지금 기생이라는 직업이 없다는 게 다행이다. 40살이 넘어서 대성할 거라는데, 난 그렇게 늦게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 의외였다. 과연 세상이 그렇게 오래 날 가만히 둘까? 예측이 맞던 틀리던, 어쨌든 천지개벽할 변화는 없었고 지금 사는 삶의 모습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삶을 한 꺼풀 엿보고 나니 오히려 현재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너무 길고 거대하며, 지나간 일은 벌써 지나가 버렸으니까. 서럽게도 과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느낄 수 없는 거시적인 삶의 흐름은 흐름대로 두고, 잘 보이는 오늘이나 꼭꼭 야무지게 밟아가며 살아야겠다. 기질은 기질대로 성향은 성향대로 살리고 원하는 대로 더 표현하며 살아야겠다. 철학관을 나와서 집으로 내려가는 길, 우리는 현재에 더 충실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