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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Sep 09. 2020

벗고만 안 다니면 되지

패션 현타가 온 박약 독백

어제 입고 나갔다 온 옷을 복기해보자면, 이모가 딸에게 줬는데 안 맨다고 해서 내게 온 미니백.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창고 대방출'이 떴다며 5000원에 공동 구매해준 캔버스 뮬, 남자 친구가 선물해준 체인 달린 귀걸이. 말 그대로 짬뽕이었다. 미니멀하게 살려해도, 주변에서 대체 도와주질 않는다는 핑계를 대 본다. 대학생 때는 이런 직장인이 될 거라 생각 못했는데, 아니 오히려 되게 세련된 직종에 종사할지 알았지, 패셔너블이라는 단어는 멀어진 지 오래다.


우리 엄마 아빠가 귀에 딱지가 얹도록 하는 말이 있었다. '벗고만 안 다니면 되지'. 워낙 화려하고 튀는걸, 진한 화장을 얹는 걸 좋아했던 중고등학생 때, 정말 내가 추후에 그렇게 생각할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미에 관심이 많았던 때.'넌 클럽 가니?'라는 말을 수업시간에 듣던 대학생 시절, 어떻게 그렇게 딱 붙는 미니스커트를 끼고 살았을까.


가끔 브이로그들을 보며, 랩 원피스를 차려입고 예쁘게 돌돌 말린 머리를 한 직장인이 내심 부러웠다. 방법은 알지만 출근 전 아침마다 세팅에 시간을 들이고, 하루 종일 편치 않을 옷을 입을 자신은 없다. 주변 친구들도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고 안 꾸미다 보니 감도 이제 없다. 순식간에 불어버린 살도, 약간의 현장직을 겸한 직장도 좋은 변명거리가 된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심심해졌다. 일상 vlog나 찍어 올려볼까 싶어 일상을 돌아봤는데, 감각적인 브이로그로 찍힐 만한 예쁜 각이 도저히 안 나온다. 벽지가 누레진 오래된 아파트, 화면을 꽉 채우는 부한 얼굴, 편한 대로 걸쳐 입고 다니는 옷, 보편적이면서도 마이너 한 취미, 하이텐션이 아닌 로우 텐션, 평소 영상을 즐기지 않아 따라가지 못하는 트렌드. 일단 기획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짧게 짧게 찍어 sns에 올리고 반응을 본 후 주제를 설정해보아야겠다. 


'좀 더 세련되게, 혹은 깔끔하게 다녀야겠다'는 생각과 '벗고만 안 다니면 되지'라는 자아가 싸우고 있다. 지금까지는 후자에 훨씬 가까웠다. 아마 당분간도 후자가 훨씬 강할 것이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니는 게 내 본래 취향에 가깝다. 뭔가 패셔너블한, 세련되고 싶다는 에너지는 다른 것에 쏟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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