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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Aug 16. 2021

오랜만에 본가에 왔다

타향살이의 허함을 채우는 순간

우리 가족은 4인 4가구로 산다. 다들 다른 지역에서 1인 가구로 본인의 역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두 달에 한두 번은 본가에 모여 따로 또 같이 주말을 함께 보낸다. 날 때부터 독립적으로 자랐지만, 우리 가족은 유난히 본인의 삶에 집중한다. 다들 혼자 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지만, 여하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미래로 현재로 맹렬히 달리고 있다.




우리 집보다 엄마 집이라 자주 불리는 본가는 우리 집, 그러니까 내 집에서 차로 1시간 거리 정도 걸리는 이곳에 이모들이 방문했다. 몇 주 전 잠깐 보긴 했지만, 그래도 여유롭게 보고 싶어 본가에 왔다. 본가는 역시 다르다.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은 생동감 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밥을 함께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농담하고 웃는 새 사회적 근육이 붙는다.




평소 같았으면 일어나 바이올린 연습 좀 하고, 그리던 그림 좀 그리고, 책 좀 읽다 오전이 가면 냉동고에서 얼어있는 반찬들을 덥혀 펜트하우스를 동무삼아 밥을 먹고 집안일을 좀 했을 테다. 하루의 적막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소리가 깨 줬을 테다. 쌍방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리와 행위들이 반복되었을 테다. 그 점 어디선가 심심함을 느끼면 괜스레 차를 타고 한 바퀴 돌다 왔겠지.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사람과 친구를 만나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원래 전화를 즐기는 편도 아녔어서, 거의 일적인 관계로만 사람을 만난다. 물론 미팅에서도 사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곤 하지만, 나같이 사회적인 사람은 확실히 지루해졌다. 단순히 유희가 목적인 관계 유지가 어려워졌다. 이삼일에 한 번씩 미팅이 있긴 하지만,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녹는 시간 정도의 소통에는 늘 아쉬움이 있다.




가족이라는 제일 편한 관계에서 어릴 때 이야기를 하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즐겁다. 엄마를 보면 늘 자매가 부러워진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자지러지고, 새벽까지도 수다를 떨다 잠든다. 우리가 꺼내는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모두가 최소 29년은 아는 사이이며, 엄마와 이모들은 이제 생에 건강과 재미밖에 바랄 게 없다. 자식들도 다 성인이 되었고, 이제 삶의 지향이 심플해졌다.




사회와 다르게 무조건적으로 받는 애정과 응원은 속을 따뜻이 차게 한다. 내가 하겠다는데도 설거지를 손도 못 대게 하는 작은 이모가 '아이고, 우리 약이' 하면서 말끝마다 붙는 '우리'의 힘은 나를 든든하게 지켜준다. 애들이 다 크니까 든든하다는 큰 이모는 약이는 커서 뭐라도 할 거라고, 안되면 자기가 지원해주겠다며 무조건적인 확언을 한다. 가족의 힘은 그런 것이다.




밥을 제대로 지어먹으니 세 끼만 먹어도 하루가 간다. 옛날에 대가족은 정말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가도 그래도 지금처럼 마음의 병이 많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 누군가와 부딪혀야 하고 대화해야 하고 할 일이 있으니까. 타향살이 혼자 심심해 외롭다는 아빠에게 "현대인들은 원래 다 외로워! 혼자 사는데 어떻게 안 외로워! 나도 외로워!!!" 했다가 다 같이 죽는다고 웃은 적이 있었다.




본가에서 함께 있는 시간들이 따뜻할수록 자꾸만 혼자 사는 썰렁한 내 집이 그려진다. 혼자서 밥을 먹고, 예쁜 안주들과 맥주를 마시고 빔으로 넷플을 보면서 주말을 보내는 게 트렌디해 보이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계속해서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enfp의 정석인 나에게는 소통의 단절이 힘들다. 쌍방향 소통을 원하는데 넷플릭스도 책도 자꾸 일방향적인 소통만 한다. 나도 말을 하고 싶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작업실도 있고 남자 친구와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고 시간도 돈도 있고 원하는 수업을 다 듣는데도 자꾸만 뭔가 허한 기분. 요즘 그 허함을  좇았는데 오랜만에 허하지 않은 따스하고 옹골찬 주말이었다. 가족들의 다 개인 스케줄이 많고 친척들도 꽤나 바빠서 자주 보진 못하지만, 그래도 가끔 속이 허할 때는 가까운 친척집에 달려가 충천해야겠다는 기분이 든다.




다른 지역에서 독립한 친구가 많았을 때는 다 비슷한 상황이어서 자주 만나 각자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심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었다. 이 소도시로 이사오고서는 본가에 사는 친구들이 많아 분위기가 다르다. 본가에 산다는 것은 묘하게 태가 난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정갈한 옷 상태, 음식의 차이 등. 1인 가구로서 부러울 때도 많다. 독립을 하면 개인 시간이 아주 많고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할 수 있다. 뭐든 장단이 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4인 4가구, 그러니까 1인 가구 4명으로써 각자의 삶을 성실히 영위하려 한다. 근본적인 허함은 가끔씩 와서 충천해도 충분하다 믿고 가끔은 친척이라는 양념까지 뿌리면서. 이렇게 밖으로 활동을 못 할수록 가족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딴 것 상관없이 서로 사이좋음을 감사하게 여기면서, 이모들과 고모들을 오가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고 또 희망을 가지며 살아야겠다.


 


박약이 주는 삶의 용기가 필요하다면?

https://brunch.co.kr/magazine/bakya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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