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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Sep 08. 2021

처음 리본을 묶어본 순간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스승

당신은 어떻게 리본을 묶을 수 있게 되었나요?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을 그 찰나의 순간이 난 또렷이 기억난다. 어릴 때 다니던 웅변학원에서는 꼭 철심 비슷한 줄로 원고들을 모아 플라스틱 판을 앞뒤로 대고 리본을 묶어 가지고 다녔다. 그냥 꽉 묶고 다니면 다음에 풀기가 힘들었고, 줄이 헐거우면 대본을 편안하게 볼 수 없었다.


야물지 않은 어린이들의 손으로는 깔끔하게 리본을 묶기 어려웠다. 방과 후에 난 꼭 아빠한테 리본을 묶어주라고 했는데, 몇 번 묶어주던 아빠는 리본의 원리까지 설명하면서 리본 묶는 법을 알려주었다. 먼저 묶어 보이고, 내가 묶고, 풀었다가 다시 묶어 보이고, 내가 묶고. 그 찰나는 지금도 머릿속에서 오래된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듯이 재생되곤 한다.


어릴 때 살던 복도형 아파트에서는 비밀번호가 아닌 돌리는 열쇠를 사용했다. 아주 어릴 때, 그 열쇠를 돌려가며 여는 방법에 대해 배웠던 것도 기억난다. 집에서 몇 번을 나갔다 들어와도 쉽게 익힐 수 없었던 열쇠여는 법. 이번에도 아빠는 열성이었다. 원리를 설명하고, 열어보고 다시 잠가보고.. 여러 번을 반복하던 그 과정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현관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기 귀찮을 정도로 추운 겨울이었다.


살면서 어찌 필요한 게 리본 묶는 것과 열쇠 여는 것뿐이었을까. 손끝이 야무진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배우고, 반복했을 것이다. 다른 건 다 기억나지 않는데, 리본 묶는 것과 열쇠를 배우는 것은 어떻게 이렇게 생생히 기억나는지, 어린아이의 눈에 그 두 개를 할 수 있고 말고의 차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나 보다. 


29살인 지금도 아빠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눈길에 혼자 가드레일을 박아 앞부분이 날아간 차도, 폐차장에서 일부 부품을 사서 아빠와 함께 갈았고, 주기적으로 함께 차를 열어 문제가 없는지, 각 기계의 작동원리는 뭔지 배운다. 시골에서 경운기를 운전하는 법부터 전기드릴을 쓰는 방법, 간단하게는 긴 사다리를 타는 방법부터 페인트칠을 하는 방법까지도 모두 원리가 있고 그냥 해보는 것과 원리를 배우는 것은 다르다.


내 인생에서 제일 감사한 스승은 남들도 다 하는 간단한 동작부터 이해하기 쉽게 해 준 고마운 아빠다. 어릴 때는 조금 더 야무진 원고 문지를 만들게 해 줬고, 잘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것과 학습하는 것을 두렵지 않게 해 줬다. 이러한 경험은 내 속 어딘가 남아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질문했을 때 그건 이렇게 하면 된다고 자세하게 답하게 되어 다른 사람들과 효율적으로 일하게도 한다.  


오늘도 나는 무언가가 궁금하고, 새로운 것을 꼭 스스로 해보고 싶다. 야심한 밤,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가족 단체 톡방에 유튜브 링크 하나를 첨부한 카톡을 보낸다. "아빠! 이 영상에 있는 차박, 이렇게는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우리도 차 내부를 이렇게 만들어보는 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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