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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Sep 16. 2021

마음속 안식의 고향

고마운 우리 외할머니에게

미니멀리즘이 떠오르면서 나는 더욱 자주 우리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되었다. 마루가 있었던 그 예쁜 기와집은 늘 정갈했다. 몇 없는 살림살이는 늘 제자리에 있었고, 할머니는 걸레로 자주 방안을 훔치곤 했다. 반짝이는 햇볕은 마당 어디에 앉더라도 누릴 수 있었다. 가끔은 앞집 지붕 위에서 삵만한 고양이들이 싸우곤 했다.     


할머니의 겨울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는 늘 시원한 마같은 원단의 저고리 모양의 옷을 입고 계셨다. 혹은 뜨개로 뜬 옷들을 걸치고 계셨다. 동생들과 난 마루에 앉아서 수다도 떨고, 뛰어놀기도 하고, 마루 중간의 기둥을 잡고 위험하게 빙빙 돌기도 했다. 할머니 집에는 자개농과 따뜻한 아랫목이 있었다. 할머니 집의 여름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날, 할머니의 집은 큰 도로가 되었고, 우리 아파트 6층으로 이사 왔다.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기에 음식을 스스로 덥혀먹는 게 일상이었다. 할머니가 우리 아파트로 오고 난 후에는, 집에 도착해도 맞아주는 사람이 있고 따뜻한 밥상이 금세 차려지곤 했다. 자주 베란다로 집 앞의 바다를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등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산 중턱에 있었고, 중간에 약수가 나오는 약수터가 있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페트병을 들고 자주 물을 뜨러 갔다. 페트병에 물을 졸졸졸 담으며 학교 이야기도 하고, 친구 이야기도 했다. 할머니는 주로 들어주었고, 리액션을 해주셨다. 이야깃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물을 뜨다 친구가 보이면 활기차게 인사도 했다.     


외향적인 가족들과, 친가와 달리 할머니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할머니네 집은 늘 조용했다. 엄마는 늘 절간 같다고 하곤 했다. 노랫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반짝이는 햇살이 쏟아지는 마당은 늘 안온했다. 나는 그 집에서 과일을 먹고, 낮잠을 자고 내내 쉬었다. 쉬기만 해도 시간은 달콤하게 흘러갔다. 지금 용어로 말하면 힐링이라고나 할까.      


그 영향일까, 나는 혼자 있어도 노래를 잘 듣지 않는다. 그저 무음의 조용한 순간을 즐긴다. 몇 년 전부터 볕이 잘 드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강변이 되었든 카페가 되었든 공원이 되었든 햇볕을 맞으며 앉아있는 시간을 거의 매일 갖는다. 언젠가 마루와 마당이 있는 집을 가지는 것이 꿈이다. 자취 처음에 엄마는 이 집이 너무나 절간 같다고 했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6학년 때 천국에 가셨다. 그곳에서 더 행복하시겠지만. 감히 이승의 잣대로 말하자면 지금까지도 함께 했으면 참으로 좋겠다. 친척오빠가 자수성가한 것도 보고, 나랑 동갑내기 친척이 성숙한 어른이 된 보고, 친척동생이 선생님이 된 것도 보고, 막내가 대학생이 된 것까지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내 취향을 만들어준, 늘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봐준 우리 할머니께 감사하다. 내 마지막 모습이 초등학생이었을 텐데, 벌써 이렇게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달콤한 식혜와 맛있는 간식들을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는데. 그건 아주 나중으로 기약하고, 나는 오늘도 받은 사랑의 힘으로 지상에서 선하고 바르게 살아야겠다. 눈을 감고 떠올리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마음속 안식의 고향을 만들어준 우리 외할머니가 언제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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