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5년 ~ 11년의 이야기
직책 요약 - 사원 : SW(S), 대리 : DR(D), 과장 : GJ(G), 차장 : CJ(C), 부장 : BJ(B)
우리 회사는 참 운이 좋았다.
초기에 B2B로 자리를 잡은 게 아니라 특정 은행 상품 거래 사이트 수수료로 3년간 먹고살다가 상장하고 나서 B2B가 활성화되면서 5년 만에 업계 1위도 달성하였다.
B2B가 시들해질 때쯤 구매대행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수익구조의 70%는 구매대행으로 유지되었다.
회사 내에 레전드 영업 사원이었던 우G가 있었다.
필자가 2004년 신입으로 들어온 지 몇 달 안 돼서 과장급으로 입사하신 분인데, 컴퓨터 부품 서비스 센터 일을 하다가 입사하신 분이었다.
이분이 왜 대단하냐면 3년간 매일 새벽마다 (상장 후 퇴사하신) 부사장님 집 앞으로 출근해서 수행기사를 자처하면서 부사장님에게 B2B 업무에 대한 모든 걸 배우신 분이었다.
예전에 주말에 출근했을 때 마침 우G도 출근하여 식사하면서 심도 있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면서 알게 되었다.
수리기사로만 일하다가 영업으로 입사했는데 그때 당시 신혼이었고 아기도 생기면서 "저 사람(부사장)한테 일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 가족의 미래는 없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당시 부사장님은 은행 상품 공모전에서 1위를 해서 상금 1억을 받으실 정도로 금융 상품 관련 업무로는 진정한 능력자이셨다.
1년간은 정말 기사처럼 운전만 하다가 부사장님도 슬슬 차 안에서 업무적인 얘기를 해주셨다고 들었다.
우G는 입사한 지 3년이 지난 시점부터 매년 영업팀 실적 1위였고 초 고속 승진으로 부장까지 디이렉트로 올라갔다.
우리 회사 인사평가 등급 유일한 S 급이었다.
S 급은 인센티브가 기본급의 600%였다.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면서 아무도 S 급을 달성한 직원은 없었다.
5년간 S 급을 받으셨고 전 직원에게 한턱도 많이 내셨다.
구매대행이 커지면서 우B는 구매대행 쪽 영업을 하게 되었다.
우B는 구매대행 활성화를 이끌은 1등 공신이었다.
충분히 겸손하다고 생각했는데 욕심이 과했을까? 구매대행으로 골프채 몇억짜리 계약을 해왔는데 음?! 왼손 잡이 용이란다.
어느 날엔 지렁이 추출 성분 미스트 이런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계약되어 창고로 들어왔다.
그 말로만 듣던 백 마진을 하다가 세 번 정도 걸려서 우B는 회사에서 방출 당하게 되었다.
계속 성장하던 회사가 잠시 브레이크가 걸린 적이 있다.
구매대행업체 대표가 자살을 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대금 30억이 날아간 적이 있었다.
2년간 인사평가를 생략했다.
당연히 2년간 인센티브도 없었다.
그래도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사장님은 "국내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하시면서 중국과 대만 쪽을 계속 콘택트 하셨다.
사장님의 독단으로 대만 쪽 대기업으로 회사를 넘기기로 하였다.
대만 기업 한국지사를 만들어서 사장님의 주식 500억을 넘겼다.
하지만 한국지사 대표가 돈을 가지고 도망갔다.
인수자금이었던 대부분이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이었으며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부사장 포함 밑에 임원들은 모두 퇴사조치되고 임원들은 사채업자들로 모두 교체되었다.
경영지원팀은 은행 인증서도 사채업자들에게 다 뺏기고
고 스펙인 사람을 바지사장을 앉혀놓고 회삿돈을 계속 가져갔다.
대표가 고 스펙이라며 오너 리스크 거론하면서 주식이 오르던 웃픈 기억도 있었다.
명절이면 임원들이 떡값으로 몇억씩 가져가고 경영지원 팀장으로 온 사람은 연봉이 4000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한 달에 청구하는 금액이 3000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정말 회사 돈이 줄줄 새고 있었다.
가끔 검은 정장 입은 키가 크고 마르고 피부가 검은 중년 남자분이 왔었는데
사채업자들이 90도로 인사를 하길래 뭐지?! 했더니 조폭이라고 들었다.
다른 직원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유명한 기업사냥꾼이 사장님을 설계한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미 상장한 IT기업 3곳이 상장폐지를 당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름 석 자만 구글에 검색해도 주식을 해봤다면 이름을 들어봤을법한 업체들 포함 우리 회사도 항상 거론되었다.
사장님은 전체 메일로 대만에서 대기업 회장도 직접 만났었고 나의 결정이 이지경이 될 줄을 몰랐다고 사과 메일과 직원들에게 위로금으로 한 달 치 월급을 계좌이체해 주었다.
모든 직원이 회사가 망해가는 걸 알았고 대부분 장기근속자들이어서 앞으로의 살길이 막막해져 가는 걸 느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검찰 조사가 나왔다.
뉴스에서만 본 검찰이라고 적혀 있는 파란 박스들을 들고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검찰 조사 나왔습니다. 모두 키보드에 손때세요. 모두 일어나세요."라고 했다.
팀장급은 PC 본체 몰수, 우리 개발팀은 데이터 베이스부터 메일 서버까지 다 가져갔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딨을까, 이미 쫓겨난 우B를 포함한 백마진하던 영업사원 5명이 검찰에 넘어갔다.
전 직원이 탄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사장님을 겨냥한 검찰 조사였으며 영업사원 5명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역시나 우려하고, 예측하던 일이 일어났다.
회사 돈은 줄줄 새고 있는데 매출과 이익을 허위로 보고 하다가 꼬리가 길어져서 밟혔다.
분식회계로 상장폐지가 되었다.
회사 분위기는 거의 패닉 수준이었다.
상장 때 우리사주를 받아 계속 들고 있던 직원들은 주식이 한순간에 종이 쪼가리가 되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네이버 종토방(종목토론실) 에선 사시미 칼, 망치 들고 와서 직원들을 다 죽이겠다는 협박 글이 넘쳐 나고 있었다.
더 이상 회사에 꿈도 희망도 없었다.
더 안 좋아질 상황만 남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무기력감도 느낄 수 없었다.
월급만 안 밀리길 바랐던 것 같다.
나날이 늘어나는 불안감과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예전에 우G와 대화하던 내가 그 시점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신혼이고 아이도 생겼던 시기여서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돌파구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