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속 사진첩을 둘러보다가 나도 무슨 의도로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나는 시점에 저장해둔 이 이미지를 발견한 덕분에 정신이 바짝 난다. 과거의 나에게 감사한다. 오늘의 나를 위해 이걸 준비해 놓은 친절함에.
요 근래 며칠 동안 내가 무기력해지고 있다. 내 기분을 요약해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말 큰일이 일어났다.'
사실 일주일 전만 해도 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재택근무를 좀 더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은 비틀어졌다. 이제 나는 재택근무는 내가 원하는 정도로는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이 건드려진다.
내가 무기력한 이유는 지금의 상황과 미래의 상황이 같거나, 혹은 더 못할 거란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게 ‘헛되었구나’라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그동안 내가 노력한 방식이 과연 제대로 되었던 건지 회의감이 든다. ‘난 그저 시늉만 했었구나.’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속상하다. 왜 나는 아직도 치열하지 않은가. 혹은 치열해지지 못할 만큼 부족한 건 뭐였을까?
내가 갖고 싶은 자질은 스마트함과 집요함, 현명함 등이다. 간혹 난 이런 재능들을 어느 정도로 충분하게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살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현명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스마트한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인정할 만큼의 완성도와 성실함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만족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야겠다는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할까?
답이 없는 질문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나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무한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나의 에너지원들을 며칠 동안 못 봤다. 그래서 지금 내 컨디션이 더 저조해졌나? 지난 며칠 동안 내 문제에 몹시 빠져 있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게도 에너지원이 있다는 사실과 그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 사랑은 눈에서 멀어지면, 쉽게 거두어지는 듯하다.
갑자기 추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처음에 김지원이 손석구에게 '날 추앙해요'라는 말을 했을 때, 솔직히 내가 잘못 들은 건지 헷갈렸었다. 추앙은 낯선 단어였다. 일상 속에서 자주 쓰는 단어도 아니었고, 드라마에서도 넘 맥락 없이 툭 말한 거라서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거지.
추앙하고, 추앙받고 싶다.
이건 또 <나의 해방일지> 시청 후유증인가 보다. 얼마 전에 내가 즐겨보던 <나의 해방일지>, <우리들의 블루스> 두 개의 드라마가 거의 동시에 끝났다. 은근 쌍끌이로 힐링을 시켜주어 두 드라마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는데, 둘 다 같이 종료가 되어 버려 아쉽다. 아직까진 대체할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나는 일상에서 사람들로부터 내가 원하는 반응을 받기가 참 어려운 편이다. 그래, 반응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추임새가 별로 없다 보니, 인생이 건조하고 감사할 일이 적다. 그래서 더더욱 인생을 낭비하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이상한 건 내가 원하는 반응이 없는 것만큼은 아무리 살아보고 견디어 봐도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도 더더욱 필요하다.
그거, 추앙이라는 거.
여기까지 쓴 글을 읽어 내려왔더니, 그새 내 내면의 비판자가 슬며시 활동하기 시작한다. ‘며칠 째 무기력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더니, 드라마에서 본 추앙으로 끝내니?’, ‘즉흥적인 글쓰기. 일기장에나 쓰라고, 이딴 글은.’ 이런 식이다. 나조차 나를 완전히 인정해주지 않고 있단 걸 깨달았다.
아, 그래서.
나는 추앙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필요한 거구나. 서로가 서로를, 조건 없이 인정하는 거.
오늘 난 내 인생에 추임새가 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