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듯, 빠른 듯, 때로는 느릿하고 나태하다가도, 저돌적으로 달려들다가 금세 조심스러워지는 마음.
이 모순되고 복잡한 흐름이 바로 내가 살아내는 감정의 리듬이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시시때때로 바뀌고, 아주 작은 일에도 크게 요동친다.
그중에서도 설렘이라는 감정은 한때 연애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삶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설렘이 찾아오곤 했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의 리듬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그런 순간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감정을 느낄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나의 감정도 이대로 무덤덤하게 말라 비틀어지는 걸까 싶던 어느 날, 덕질에 눈을 떴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고, 그에게 애정을 쏟는 과정 속에서 내 마음은 다시 몽글몽글해졌다.
나이 먹고 주책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내 나이가 어때서’ 하는 생각이 스친다.
어릴 적 어른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이 들어도 마음은 그대로야. 외모만 늙지.”
그 말이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생각난다.
설렘은 언제나 행복을 동반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떠올리며, 그가 추천한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고, 공연장에서 눈인사를 나눴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때로는 이 콩닥거림이 ‘나 부정맥인가?’ 하는 건강의 적신호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떨림이 싫지 않다. 이 나이에 다시 이런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게, 때로는 고맙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최근 몇 년간의 덕질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훅 빠져들어 이런저런 작업에도 참여하고, 꽤 적극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열정은 빠르게 타올랐고, 그만큼 금세 식었다. 감정의 리듬이 빠르게 솟구쳤다가 급격히 가라앉는, 불꽃처럼.
아주 오래전의 덕질은 좀 달랐다.
혼자, 조용히, 관망하듯. 고요하게 오래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35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애정은 내 안에 남아 있다. 물론 불같이 타올랐다가 탈덕 직전까지 갔던 시기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긴 시간을 함께해왔다.
반면 최근 5년의 덕질은, 그 꾸준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너무 빠르게 불타올랐기 때문일까.
필요 이상의 정보와 과도한 관심이 애정의 지속력을 방해한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알아도 모른 척, 모르면 모르는 대로 고요함을 유지해야 애정 전선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정보가 너무 쉽게 흘러드는 시대다. 굳이 캐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 고요한 덕질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나름 애로사항이다.
그래서 이제는, 예전처럼 해보려 한다.
오래전 방식으로 돌아가, 조용히, 고요하게, 오래도록 덕질하고 싶다.
지금 내가 애정을 담아 바라보고 있는 한 아티스트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이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졌다. 그의 성장을 지켜보며 생기는 감정의 파동이 내 일상에 작지만 꾸준한 리듬을 만들어준다. 나도, 그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나아가는 이 시간 속에서 조용히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이 요즘 내게는 꽤 큰 기쁨이다.
그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지, 얼마나 유명해질지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 그에게서 느꼈던 좋은 감정처럼, 그가 자신만의 음악을 펼쳐나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오지랖인지, 순수한 응원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음악을 하겠다고 말하는 우리 아이들보다 조금 앞서 그 길을 걷고 있는 그가 잘되면,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안엔 참 여러 감정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