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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통사고를 당한 순간

by Balbi


덕질을 하는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는 ‘어덕행덕’과 ‘덕통사고’일 것이다. 덕질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기에 때로는 상처를 받고, 마음이 다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생긴 말이 바로 ‘어덕행덕’이다.

어차피 할 덕질, 행복하게 하자.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행위 속에서 불행이 싹트면 안 되지 않겠는가.


덕질, 누군가에게 애정을 쏟는 이 행위 속에서 많은 이들은 행복감을 느낀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새롭고 다양한 배움을 얻으며 성장한다. 언론에서 가끔 다뤄지는 사생팬을 제외한 대부분의 팬들은 이 같은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덕질을 하며 그 범위가 점점 확장되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이 많아졌다. 문화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유식해지고, 마음은 넉넉해지고 풍성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삶이 무료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덕질을 권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덕질이라는 것이 무작정 시작되는 건 아니다. 공연이나 작품, 혹은 아티스트에게 작은 호기심이 생기거나, 누군가의 권유로 우연히 접하게 되는 순간, 마음에 큰 울림이 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덕질을 시작하게 된다.

그 순간을 흔히 ‘덕통사고’라 부른다. 예기치 못하게, 교통사고처럼 순식간에 벌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요즘 내 마음속에는 방이 너무 많아졌다. 크기가 각기 다른 방들이 애정도에 따라 순간순간 넓어지기도, 작아지기도 한다. 그중 요즘 가장 크게 자리 잡은 이는 어린 피아니스트다.


언제부터였을까. 왜 이렇게 커졌을까. 가만히 떠올려보니 분명한 순간이 있었다.

2024년 4월 25일, 현충원 신춘음악회.

가수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내가 오랫동안 좋아하던 곡이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그날 공연에서, 하나둘씩 쌓이는 악기들과 함께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펼쳐졌다. 그 사운드는 정말 매혹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대에서 다른 피아니스트가 연주했더라도 반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 그의 연주에 반했다는 것이다. 섬세하고 절제된 터치,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감정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연주.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의 연주가 너무 좋아 중간에 핸드폰으로 짧은 영상을 남겼다. 공연장의 분위기와 곡이 주는 감정적 울림도 분명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연주 자체가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의 연주를 더 듣고 싶어졌다. 아직 그가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지난 1년 동안 여러 공연을 지켜보며 그의 연주가 돋보이는 순간들을 집중해왔고, 그때마다 느낀 건 늘 같다.

그는 섬세하다.


나는 화려한 테크닉보다 곡을 얼마나 세심하게 표현하는지에 더 끌린다. 그 연주가 내 마음에 울림을 남겼는지, 그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한 포인트다. 아들의 기타 선생님을 고를 때도 이 기준을 적용했다. 섬세한 연주, 마음이 움직이는 울림.


요즘 세상엔 실력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실력만으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콕 박히는 아티스트는 그리 많지 않다.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감성의 포인트를 건드려주는 매력을 지닌 이는 극히 일부다.


그래서 아티스트를 꿈꾸는 아들에게도 늘 말한다.

“실력은 기본이고, 매력이 있어야 해.”


이렇게 덕질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깊이 알아가고 있다.

화려한 테크닉보다 섬세한 감성의 연주를 더 좋아하는구나.

고음이라고 다 같은 고음이 아니구나. 고음의 결도 다 다르구나.

결국, 덕질은 타인을 사랑하는 과정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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