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고를 한 후_해소, 한숨, 현실, 후속

by Balbi


시작은 단순했다. 이것을 써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목표나 다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래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무심히 시작한 것이 소설이었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11편의 중편소설을 완성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가벼운 끄적거림으로 시작해 한 편이 완성되자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새로운 에피소드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다. 내가 보고 듣고 상상해온 수많은 얼굴과 이야기들이 엉켜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인물들로 그려졌다. 총 11편의 글로 완결을 지었지만, 모든 묵은 감정을 다 담지는 못했다. 아주 일부만 담았을 뿐이지만, 그 글을 쓰는 동안 시원함과 통쾌함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해소가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초안을 완성하고 퇴고를 거치며 욕심이 생겼다. 그냥 묵혀둘 게 아니라 신춘문예 같은 공모전에 한번 내볼까? 인생 처음 써본 소설로는 무모한 꿈일지 모르지만, 나는 늘 도전하고 무모함에 겁 없이 덤비는 사람이니까.


1차, 2차, 3차… 끝도 없이 퇴고를 거듭했다. 초안은 공모전에 제출하기엔 거칠고, 아침드라마 같은 느낌이었다. 공모전 출품작들처럼 조금은 난해하거나 은유적인 표현이 부족했다. 그래서 다듬고 또 다듬었다. 특히 은유에 서툰 나는 산책을 나가 주변의 사물이며 나무, 꽃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풀숲에 숨어 있던 참새가 갑자기 날아오르는 모습, 바싹 마른 나뭇잎이 나뭇가지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모습, 한때 악취가 심했던 하천의 냄새가 사라진 풍경까지. 그런 장면들이 눈에 밟혔다. 관찰을 통해 본 것들이 내 글 속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며 중간 중간 적용해보았다. 은유가 더해지니 글이 아침드라마에서 미니시리즈쯤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초안 완성 당시에는 스스로 만족스러웠던 글이, n차 퇴고를 거듭하다 보니 '이걸 정말 제출해도 될까' 하는 검열 단계까지 이르렀다. 읽을수록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이제 와서 야심찬 계획을 접기엔 아쉬움이 컸다. 보고 또 봐도, 더 이상의 수정은 이 글이 삼천포로 빠지는 길일 것 같아 이쯤에서 퇴고를 멈추었다.


원고를 출력하고 표지를 만들어 끼우고, 공모전 서류도 준비해 묶음을 봉투에 넣었다. 내일 우체국에서 발송하면 이 소설은 내 손을 완전히 떠난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첫 소설로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스스로에게 작은 박수를 보낸다.


이제 후속작을 써보려 한다. 이번엔 첫 소설보다는 조금 더 문학적인 글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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