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의 반란_오이지 참치 김밥

by Balbi


7월이 오며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무더위가 시작되면 늘 하던 일이 있다. 콩국수를 위한 콩을 삶아 냉동실에 넣어두고, 오이지를 담그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더위가 본격화되기 전, 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콩국수는 날이 더워지자 수시로 해주었더니, 아이들이 슬슬 거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여름은 이제 시작인데 말이다. 콩국수와 번갈아 줄 다른 메뉴를 고민해야 한다. 냉장고에 넣어둔 오이지를 활용해볼 요리를 떠올렸다.


작년엔 반 접씩 두 번 담갔던 오이지를, 올해는 처음부터 한 접을 통째로 사 왔다. 작년보다 조금 더 투자해서 좋은 오이를 골라왔다. 박스에서 꺼내 씻어놓고 보니 양이 제법 많았다. 욕심이 지나쳤나 걱정도 들었지만, 여기저기 나눠 먹다 보면 금세 줄어들 오이지다. 100개의 오이는 물 없이 절이는 방식으로 두 개의 김치통에 나눠 담아 두었다.


(오이지 만드는 방법은 아래 글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s://brunch.co.kr/@balbi/31


오이지무침은 여름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반찬이다. 특히 나와 남편에게는 단연 인기지만, 아이들은 손도 대지 않는다. 이렇게나 많이 만든 오이지를 다양하게 활용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김밥을 떠올렸다.


오이지는 반으로 잘라 단무지처럼 길쭉하게 썰어준다. 찬물에 20~30분 정도 담가 짠맛을 빼고, 채반에 받쳐 물기를 빼준다. 손에 힘이 좋다면 오이지를 꼭 짜주어도 좋다.

참치는 기름만 살짝 따라내고 준비한다. 계란은 지단을 부쳐 적당한 두께로 썰고, 양파는 잘게 다져 레몬즙을 뿌린 뒤 마요네즈로 버무려둔다.


재료는 간단하다. 오이지, 참치, 계란지단, 양파. 하지만 맛은 간단하지 않았다. 먹는 순간 느껴졌다. ‘이 김밥의 포인트는 양파다.’

참치의 느끼함을 양파가 잡아주었고, 양파의 매운맛은 레몬즙이 부드럽게 눌러주었다. 즉흥적으로 넣은 재료들이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덕분에, 김밥의 맛은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입맛 까다로운 두 아이도 “지금까지 먹은 김밥 중 제일 맛있다”고 했다.


이 김밥의 이름은 오이지 참치 김밥이지만, 실은 그 이름에 들어가지 않은 양파와 레몬즙이 핵심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전체를 받쳐주는 이 재료들을 보며, 문득 일상이 떠올랐다.

이름도 언급되지 않는 양파와 레몬즙. 극단적으로 보면 엑스트라 같은 존재다. 없어도 큰일은 나지 않을 것 같고,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막상 빠지면 음식의 완성도는 크게 떨어진다. 조연이 아니라, 사실은 중심을 받쳐주는 축이었던 것이다.


무더위에 지치고,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즈음. 생각지도 못한 음식의 재료가 조용한 깨달음을 전해주었다.

보이지 않고, 티 나지 않는 지금의 일상도, 차곡차곡 쌓이면 분명 하나의 의미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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