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아들이 장염에 걸렸을 때 만들어준 새우 야채죽.
그 죽은 아들의 속을 다스렸고, 나의 마음을 다독였다.
절대로 식지 않을 것 같던 내 화는 죽을 만드는 동안 조금씩 식어, 일상생활을 가능케 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소소한 갈등이었지만, 그때 받았던 스트레스는 결코 소소하지 않았다. 이렇게 음식 한 끼로 스르르 사라진다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머리와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혹자는 별일 아닌 일로 혼자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고 괜히 스트레스를 끌어안고 산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누구도 내 감정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다. 결국 스스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푸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요리를 시작할 때는 분명 짜증 반, 걱정 반이었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보다 짜증이 더 컸다.
아프고 싶어 아픈 사람은 없겠지만, 애미와 한바탕 갈등을 겪고 나서 토사곽란이라니.
'내가 너 때문에 이 더운 날, 불 앞에서 죽까지 만들어야 하냐!'
속으로는 이렇게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끼니를 책임지는 엄마로서의 도리는 해야 하니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름에 집에서 요리를 할 때는 최대한 불 사용을 줄이고, 불과의 거리도 확보해야 한다.
죽처럼 계속 저어야 하는 음식은 여름철 불쾌지수를 확 올리는 메뉴라 평소라면 피했을 테지만, 일반식을 먹을 수 없는 아들 상태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매 끼니마다 배달 죽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냉동 새우와 채소가 보였다. 급할 때는 냉동실을 파헤쳐 조합해보면 의외로 괜찮은 요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 두 재료를 이용해 새우 야채죽을 만들기로 했다.
쌀을 씻어 압력솥에 넣고, 평소 밥할 때보다 물을 2~3배 넉넉히 부었다. 밥할 때처럼 불에 올리고, 추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중불로 낮춘 뒤 잠시 후 꺼준다. 뜸이 들며 김이 자연스럽게 빠질 동안, 다른 재료들을 준비했다.
냉동 새우는 해동시켜 꼬리를 제거하고 1cm 크기로 썰었다. 잘게 썬 채소와 손질한 새우를 웍에 넣고 참기름을 살짝 둘러 볶았다. 볶다가 물 한 컵을 넣고 바글바글 끓여 새우와 채소를 익혔고, 그 사이 소금 간도 해주었다.
김이 빠진 압력솥을 열어보니, 물을 넉넉히 넣은 덕에 이미 죽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 볶은 새우와 채소를 넣고 다시 한 번 끓여주면 죽 완성. 이때 2~3분 정도는 저어줘야 바닥에 눌어붙지 않는다.
이렇게 손쉽게 새우 야채죽이 완성되었다.
일반적인 죽 레시피로는 엄두도 못 냈겠지만, 약간의 잔머리 덕분에 맛있는 한 끼가 탄생한 것이다.
죽을 만들며 내 화는 절반쯤 줄었고, 죽을 먹으며 "점심에 먹은 전복죽보다 훨씬 맛있다"는 아들의 한마디에 남아 있던 화는 아주 조금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엔 역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