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운 여름이라 시장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것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냉장고가 텅 비거나, 과일이 다 떨어지면 왠지 모를 허전함과 함께 우울감이 밀려왔다. 마치 삶이 궁핍해진 것 같아 서글펐다.
농산물시장에서 장을 보면 반찬 재료보다 간식거리와 과일이 더 많다. 수박, 샤인머스켓, 포도를 냉장고에 넣어두니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식생활에서 필수는 아니지만, 먹으면 좋고 안 먹어도 그만인 과일이 심리적으로 풍족감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간식거리로는 감자 10kg과 찰옥수수 30개 한 자루를 샀다. 찰옥수수는 껍질을 벗기면 쓰레기가 한 무더기 나온다. 그래서 시장 한쪽에 앉아 껍질을 미리 벗기고 알맹이만 가져왔다. 30개를 큰 들통에 차곡차곡 넣으니 가득 찼다. 물을 반쯤 채우고 소금 반 움큼, 그리고 뉴슈가를 넣어 삶기 시작했다.
20분쯤 지나, 물속에 잠긴 옥수수와 위쪽에 있던 옥수수의 자리를 바꿔주려고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물에 잠겨 있던 옥수수 색이 이상했다.
‘어라? 이거 왜 이러지?’
마치 매운 국물 위에 뜨는 기름처럼 붉게 물든 옥수수가 있었고, 들통 속 물은 붉다 못해 진한 갈색을 띠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옥수수가 익었는지 확인하려고 물속에 있던 것을 하나 먹어보니 단맛이 덜했다. 그래서 위아래를 뒤집어주고, 뉴슈가를 더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릇에 ‘뉴슈가’를 쏟아 붓는 순간, 그게 뉴슈가가 아니고 식소다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야, 이거 뉴슈가 아니고 식소다야. 식소다 넣어서 색이 이렇게 된 건가 봐.”
그래서 ChatGPT에게 물었다.
‘옥수수를 삶을 때 식소다를 넣었더니 붉은색이 되었어, 이유가 뭐야?’
답은 이랬다. 옥수수가 붉게 변한 건 식소다(탄산수소나트륨)가 옥수수 속 색소와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결과라고. 노란 옥수수에는 주로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들어 있지만, 일부 품종(특히 찰옥수수, 흑옥수수, 자옥수수)에는 붉거나 보라색 계열의 안토시아닌 색소도 포함돼 있다. 이 안토시아닌이 식소다와 반응하면 붉은색을 띠게 된다고 했다.
다시 물었다.
‘그럼 식소다를 넣으면 좋은 점은?’
식소다를 넣으면 조리 시간이 단축되고, 옥수수가 더 부드러워진단다. 알칼리성 물은 섬유질(셀룰로오스)과 펙틴을 빨리 분해해 껍질과 알갱이 조직을 부드럽게 만든다. 그래서 같은 시간 삶아도 식소다를 넣으면 더 잘 익은 느낌이 난다. 오래되거나 질긴 옥수수일수록 효과가 크다.
단점도 있다. 색이 붉거나 갈색으로 변할 수 있고, 영양소가 일부 손실된다. 게다가 옥수수 특유의 고소함과 단맛이 줄고, 약간 비누 맛이나 탄 맛이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식소다 양이 많지 않았는지 맛은 괜찮았다.
아래를 다시 뒤집고, 뉴슈가 대신 설탕을 넣어 삶았더니 신기하게도 붉은 기가 사라지고 예쁜 노란빛이 돌기 시작했다.
또 물었다.
‘설탕을 넣고 더 삶았더니 붉은색은 사라지고 조금 진한 노란색이 되었어.’
쳇샘의 대답은 이랬다. 설탕 자체가 산성은 아니지만, 물에 많이 녹으면 완충 작용을 해서 알칼리성인 식소다의 세기를 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pH가 내려가면 안토시아닌이나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본래의 노란색 형태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결국 완성된 옥수수는 시중에서 파는 것처럼 먹음직스러운 노란빛을 띠었다. 예전부터 판매용 옥수수는 색이 고운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 비밀이 바로 식소다였던 셈이다.
의도치 않은 실수 덕분에 뜻밖의 지식을 얻은 날이었다.
늦은 저녁, 독서모임에서 붉은 옥수수 이야기를 들려주니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식소다가 만든 변화를 작은 마법처럼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약간의 영양소 파괴가 있더라고, 이왕이면 맛있고 말캉말캉한 식감을 선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