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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 같은 덕질

by Balbi


아들이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으니 곧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것.

당시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육아서에 나온 말인데, 어감은 거칠고 불쾌했으나 그 속뜻을 알기에 웃으며 넘겼었다.


그런데 시간이 10년 이상 지나고 보니 정말 총량이라는 것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유난히도 날 힘들게 했던 녀석은 쑥 자라서 그 시절의 땡깡이 기억나지 않으니 말이다.


총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덕질도, 채우지 못한 총량 때문에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10대 시절에는 연예인과 농구선수 덕질이 대단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저 방에서 TV로 접했을 뿐 그들을 직접 보기위해 방송국에 가고 경기장을 간다는 것을 생각도 못했다. 억압되고 자유롭지 못한 집안 분위기에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나의 10대 덕질은 소극적이고 조용했다. 그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함께 노래를 듣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 그 시절 공연 경험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새로 생긴 백화점에 가수 이승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주말 자율학습을 빼먹고 친구들과 몰려갔던 일이 전부다.


지금 나이를 먹고 생각해보니 10대 때, 좀 더 적극적이고 후회 없을 만큼의 덕질을 해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싶은 만큼 하고 그만 두어야 미련이나 아쉬움이 생기지 않는다. 새로운 아티스트를 덕질하고 있는 지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치열하게 덕질 해 본 경험이 있었다면 지금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의 음악을 소비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에 못 해본 경험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다.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후회는 남지 않는다. 총량이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총량이 다 채워지면,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아티스트의 성공을 기원하며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티스트를 꿈꾸는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에도 총량이 있는 걸까? 덕질은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한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다. 사랑은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이성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수많은 감정의 편린들이 얽히고 설켜 끝없이 이어진다. 이 사랑이 끝나는 순간은 총량이 채워지고 그들의 모든 모습을 확인해서가 아니다. 사회적인 이슈로 인한 실망감으로 식어버린 감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덕질은 사랑이다’ 라고 명제를 정리하고 보니 과연 내 덕질에 끝이 있을까 싶다. 실제로 나는 35년째 한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있다. 큰 이슈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긴 세월 동안 사랑의 깊이가 한결 같았던 것은 아니다. 뜨겁고 깊었던 시기도, 아주 얕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그를 향한 마음은 차츰 잔잔해졌다. 그 마음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면 ‘윤슬’이다. 오랜 시간 우리 삶의 물결에 따라 그의 노래는 일렁였고, 함께 살아 움직이는 반짝임이었다.


서로의 삶을 축복하고 응원하는 이 관계 좋지 아니한가!

그래서 오늘도 난 내 마음에 들어와 있는 많은 아티스트들을 응원한다.


35주년을 맞이해서 12번째 앨범을 발표한 그를….

완전체로 뭉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그들을….

전역 후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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